2005년도에 군대에 입대하고, 2007년쯤 전역을 할 때쯤에 아버지가 이혼을 하셨다 사실 초, 중학교 때부터 부부 사이가 힘드셨다는 걸 알고 있었고, 언제쯤인가는 이혼을 하시겠다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일 때문에 늦기도 하셨고 지방 출장도 잦으셔서(그 당시에는 서울에 살았었음) 나는 엄마보다는 할머니와 같이 살았었다 엄마 손에 안 커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또래 애들보다 많이 어른스러운 편이었고, 여섯 살쯤 까지는 할머니와 살다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지방 발령이 나게 되셔서 아버지를 따라 내려오게 되었다, 추후에 또 이야기를 한번 하고 싶지만 일단은 이 정도로 하고, 엄마를 거의 보지 못했었으니 엄마와의 사이가 그다지 였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소심하고 조용조용한 성격이었고 딱히 눈에 띄는데 없이 학교들을 졸업하고 대학교 1학년이 끝날 때쯤 '아, 이분들 얼마 안가 이혼하시겠구나.'라는 걸 느낀 적이 있는데 두 분의 대화가 현저히 줄고 엄마가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지방의 모 대학교 교수랑 바람이 나있는 상태였고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아침에 우리들이 학교에 가면 나갔다가 아버지 퇴근 시간 전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하내 우리딸!
당연히 집안 살림은 엉망이었고 그러다 군대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초반에는 전화를 잘 받아주던 엄마가 상병 말 호봉 때쯤부터 전화를 안 받기 시작해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아들 전역하고 놀라지 말고 그때 다시 또 이야기해줄 테지만 엄마랑 이혼했다."
나는 놀라기보다는 덤덤했다, 그냥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기에 그러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전화를 왜 안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중에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무사히 전역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깜짝 놀랐다, 억대 연봉 근처였던 아버지, 군대 가기 전에만 해도 50평대 집에서 살았었는데 나와보니 18평짜리 거실이라고는 눈곱만 한 방 두 개짜리 아파트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친권자를 가져오는 대신 살던 집을 주셨다고 했다, 이해가 안 갔지만 어차피 아버지 것 아버지가 알아서 하시는 거니 알겠다고 했고 거기에서 이제 대학을 다니다가 여자 친구(아내)를 만나고 독립을 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딱히 이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일단은 내 인생이 아니었고 선택에 대한 책임과 결과는 온전히 본인이 지는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장모님이 재혼가정이라는 것을 들먹이면서 시집살이에 대한 고초를 털어놓는 걸 보며 왜 저럴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의 입장으로 딸의 시집살이가 걱정인 건 이해가 되었지만 그걸 사위 앞에서 하시는 걸 보면서 할 말 안 할 말을 구분을 못하시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유독 장모 말을 잘 듣던 아내였기에 거기에 휘둘리지 말라고 이야기까지 했었지만 이혼하기 전까지 계속 휘둘렸고 눈에 콩깍지가 쓰였던 나는 아무 문제없을 거라는 착각을 한다
아버지의 이혼이 왜 나에게 이혼한 사람의 자식이라는 죄인 아닌 죄인의 굴레가 쓰이는가? 내가 누군가를 폭행하거나 금품을 갈취하여 감방에 다녀온 것도 아닌데 나의 행동으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면 이해라도 하려고 노력했을 것들을 내가 하지도 않은 것들에 대한 비난이 돌아왔을 때에도 나는 아내가 아니 여자 친구가 내편을 조금이라도 들어주길 바랬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새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과거에 갇혀 산다고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과거가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냐고 그랬다 최소한 그 과거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사과, 그럼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요구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그것 역시 과거 일인데 왜 자꾸 사과하라고 그러냐고 하자 두 사람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결혼 생활 중간에 장모님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했었다, 이혼 가정이라고 나한테 뭐라 하셨던 거, 집 해오라고 강요하신 거 이제서라도 사과받고 싶다고 아내는 거절했다 받고 싶으면 네가 가서 이야기하라고 했었고 여기서 또 나는 같은 편이어야 할 아내는 결국에는 본인 얻을 것만 얻고 나는 내팽개치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 나보다 본인의 엄마가 더 중요한 사람 내 고생보다 엄마의 고생이 더 눈에 들어오는 사람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혼자 일하고, 고맙다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열심히 일해도 모이는 것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옆에서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고 오직 혼자 힘으로만 해야 하는 캄캄한 동굴 속을 횃불 하나 들지 못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럴 거면 혼자 살고 말지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소방관 체험활동
결혼을 해서 이 상황을 돌파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같이 함으로써 서로 비빌 언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힘들 때 아내가 힘들 때 서로에게 비빌 언덕, 아내 덕을 보려고 했었으면 지금 아내를 왜 만났겠는가, 나는 말의 힘을 믿었고 아내가 하는 말을 믿었고 우리가 같이 해나갈 수 있다고 믿었었기 때문에 아내와 결혼을 생각했던 것이다
내뱉은 말은 꼭 지키려고 하는 나는 아내도 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있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내가 일을 안 해도 우리 세 식구 잘 살 정도로 내가 능력이 있었다면, 이런 다툼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아내를 원망했다 내가 그렇게 잘 버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같이 할 것처럼 하지 말고 그냥 본인 원하는 잘 버는 남자 만나서 하지 굳이 날 선택해서 같이 힘들어야 하는 걸까
결국 우리는 이혼을 한다, 다시 합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확신하고 있다 시간을 너무 많이 흘러갔고 대화가 단절되었고 소송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고 곧 해가 바뀐다 한때는 그래도 어찌 대화를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들도 이제는 멈춰진 지 오래이고 아이와 잠드는 게 더 익숙해져 버린다 한때는 혼자 자다가도 옆에 있는 아내의 온기를 찾아 몸을 더듬고 팔베개를 해주고 뒤에서 안고 자던 것들도, 새벽만 되면 거실로 나가 누워있는 나를 따라 나와 안기던 아내가,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사랑이었는지 습관이었는지 모를 기억들이 가끔은 물밑에서 올라오듯 떠오르면 나는 그것을 추억이라 말할 수 있을지, 악몽이었다고 말하게 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한때는 미운 게 열개여도 좋은 것 하나로도 용서가 되는 사이였는데 이제는 좋은 것 백개여도 싫은 것 하나가 더 눈에 띄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좋아진 것도 이유가 없었고, 싫어진 것도 결국엔 아무 이유가 없었음에도 우리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