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탐방이라고 하면 보통 먹거리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우리는(아빠와 딸) 먹거리보단 뷰 맛집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줄 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서 예약이 되지 않는 맛집은 잘 안 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한때는 주도적으로 알아보고 그래서 자주 따라갔었다, 많이 기다렸다가 먹을 때는 두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먹은 적도 있었는데 나는 사실 아내가 좋아하니까 그렇게 했었지 굳이 기다려서 까지 먹어야 할까? 싶을 때가 많았다
딸랑구가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음식점에서도 언제 나오냐고 자꾸 물어봐서 맛도 맛이지만 좀 한가하고, 경치 좋은데로 가는 게 좋다, 지역에 거북선 같은 건물에 카페가 있는데 함박스테이크가 맛있다고 이야기가 돌아서 요번 주말에는 둘이 가보기로 한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외각 쪽이라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시간을 좀 조절해서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갈때즘 아이와 같이 출발했다 지역에서는 나름 유명했다는데 나는 이쪽에서 산지 이십여 년이 되는데도 지나가면서만 봤었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 부동산에 매물로 올라왔을 때도 신기하다 싶었는데, 다시 오픈하여 영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영영 못 가보기 전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더욱 앞선다
가을이 훌쩍 들어왔다, 마음은 여전히 갑갑하지만, 뻥 뚫려있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 드디어 사색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느낌과 함께 어디론가 하염없이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다른 훈련보다는 행군이 그렇게 좋았다 다리는 퉁퉁 붓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도 걷고 있는 동안 나에게 주어지는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낚시를 시작했던 계기는 아내의 권유였지만 하다 보니 바다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방울이 울리기 전까지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면 복잡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좋아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같이 가서 바다에서 멍 때리고 돌아오며 현실에서 고단함을 조금은 정리하고 왔던 것 같다
좋은 곳이 있으면 같이 가보고 싶었던 사람, 외근직이었던 나는 지방 곳곳을 돌아다녔다, 글 쓰는 초창기에 올렸던 배경화면들은 전부 내가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사진들인데, 아내와 또 같이 오고 싶어서 기록을 남겨두고 다음에 시간이 되면 꼭 한 번은 데려왔었다 아내 왈 "당신은 돌아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하면서 한 번씩 데려가는 데는 진짜 다 좋은데 같아." 너무 자주 데려와서 질려하는 곳도 있었지만 나는 아내의 그런 칭찬이 좋았고 5일을 꼬박 일하고 토요일에 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집에서 뒹구는 것보단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자고 누워있는 아내와 아이를 화장실로 밀어 넣고 준비를 하는 게 나는 좋았다
멍 때리는 동안 식사가 나온다, 손바닥만 한 함박스테이크와 매콤한 투움바 파스타, 사실 고기는 아이를 주고 파스타를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되려 아이가 매운걸 더 잘 먹는다 음식 사진을 잘 안 찍어봐서 보통은 먹기 전에 찍어야 한다는데 우리는 한 젓가락씩 먹고 사진을 찍는다
"공주님, 원래 이거 사진 찍고 먹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냥 먹고 찍네요?"
"아이 맛있는 거를 두고 어떻게 안 먹어요."
원래.. 먹기전에 찍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야무지게 파스타 면을 돌돌 말아 드신다, 하마터면 다 먹고 빈그릇만 찍을 뻔하였다 거북선 밖으로 가을이 보인다 가로수들은 노랗고 빨갛게 물들고 잎사귀들이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몇 장씩 떨어진다 3차 기일 전에 제출할 자료들을 검토하느라 아내와의 카톡 내용을 전부 보고 있다 이렇게 사이가 좋았을 때도 있구나 하는 부분도 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싸웠구나 싶은 것도 있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아내는 요즘 등산을 다니는 것 같았다 종종 나에게도 등산을 권유했었는데 나는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 잘 안 가기도 했었지만 아내를 따라 종종 다닐 때에는 아내보다 산을 잘 탔었다 매번 나보다 등산도 못하면서 자꾸 등산을 가자고 그러냐고 피식 웃었었던 기억이 난다
아내도 그동안 살면서 나름의 고충이 있던 건 알고 있다 누구의 고통이 더 심했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아내도 힘들었었고, 나도 힘들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둘 뿐이었다면 사실 아무 일도 아녔을 일들이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장모가 애초에 불공정하게 결혼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처음 약속대로 같이 좀 해줬더라면, 그게 아니라면 내가 차라리 남들보다 좀 더 벌었더라면,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이 가시처럼 마음속에 박혀있다
지나간 일이라지만 나에게는 그저 지나가버린 일이 아닌 아내 말대로 과거 속에 갇혀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다 아마도 내 성격상 죽을 때까지 그 속에 박혀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계산을 하고 아이와 같이 도넛 가게로 간다, 지인이 생일이라고 아이랑 먹으라고 준 도넛 쿠폰을 쓴다 먹고 가기에는 너무 양이 많아 포장을 하고 음료 한잔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지런히 찍어서 잘 먹겠다고 감사 인사를 카톡으로 한 장 보내고 아이에게 하나 나에게 하나 도넛을 나누고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본다 티브이 소리가 크지만 나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무 많아...
창밖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과, 바람소리가 귀가 아니라 가슴속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바람은 도대체 언제 멈추는 걸까? 멈추긴 하는 걸까? 많은 상념들이 뒤섞여 어지러워질 때쯤 아이가 내 손을 잡으면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아빠 피곤하면 낮잠 잘래요?"
"갑자기 왜 낮잠을 자래요? 아빠 원래 낮잠 잘 안자잖아요."
"피곤해 보여요 눈 밑이 까매요."
요즘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아침마다 피곤해하는 게 걱정이었는지 아이가 내 눈 아래를 만지면서 이야기를 한다, 내 불안이 아이에게 전달되었구나 아차 싶어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오늘은 일찍 잘게요 공주님 아빠가 피곤해서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공주도 저녁에 일찍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