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늘의 목적지는 산꼭대기에 있는 '오세브레이로'라는 마을이다. 보통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오르막 고비라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오늘은 30km 가까이 걸어야 하니 체력 분배를 잘해야 했다. 9kg 되는 배낭을 메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하기에 오늘은 마음이 좀 더 비장해진다. 무릎의 통증과는 매일 눈치싸움 중이다. 아플만하면 쉬어가고, 약을 발라주고, 쉴 때마다 마사지해 주면서 통증을 친구처럼 여기고 살살 달래 가며 이대로 걸어간다면 산티아고 입성까지는 일주일정도 남은 셈이다.
아침 해가 머리 위까지 올랐을 즈음, 아기자기한 동네 구경에 여념이 없이 걷는데 어디선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경쾌하고도 힘찬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나랑 키가 비슷한 할아버지였는데 내가 Hola 하고 인사를 건네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래를 계속 이어갔다. 나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할아버지 옆에서 걸으며 노래에 맞춰 박수를 쳤다. 뜻밖의 관객에 더 신난 할아버지는 노래를 발까지 동동거리며 노래를 계속 불렀다. 뜻을 다 알 수 없는 스페인어 노래였지만 아저씨는 곧이어 내게 몇 개의 음을 알려주더니, 따라 해 보라고 하고는 이내 돌림노래까지 완성해 버렸다. 뜻밖의 하모니에 우리 둘 다 신이 나서 화음도 넣고 노래를 불러버렸는지 모른다. 할아버지의 지휘가 마무리되면서 나는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즉석에서 만들어낸 노래는 어딘가 엉성했지만 마음에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 완벽함을 추구하며 시작하기를 미뤄온 일들이 몇 개였던가. 생각한 일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또 손과 발로 이어지기까지 걸린 날이 너무나 길었다. 즉흥으로 만들어진 듀엣곡은 나의 마음에 '그냥 하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보암직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만들어낸 자에게, 말하는 자에게 어떤 영감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시작하는 행위 자체는 의미가 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악수를 건넨 스페인 국적의 콴 할아버지는 아들이 하나 있는 아빠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들이 노래를 무척 잘 부르고, 아마 그 아들은 자기를 닮았기 때문일 거라며 세상 순한 아기 같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신기한 건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고, 할아버지는 영어도 할 줄 몰라서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산뜻한 경험이었다. 전에 만난 마누엘 아저씨랑은 또 다른 느낌으로 생소한 언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콴할아버지는 눈빛으로도 목소리로도 의도를 다 전달하고 있었다.
콴 할아버지는 나에게 답가를 요청해 왔다.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고민하다가 전 국민이 알만한 동요 '숲 속을 걸어요'를 답가로 선택했다. 마침 우리가 접어든 길에도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노래 후반부에 다다라 높은음으로 다다랐을 때 나는 내 목에서 이렇게 고운 음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깜짝 놀랐다. 콴할아버지는 나의 답가를 진지하게 경청해 주었다. '정다운 얼굴로 우리 모두 숲 속을 걸어요' 노래를 마치며 나는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나의 목소리에 아름다움이 깃들어있다고, 앞으로도 계속 노래 부르는 삶을 살라며 응원을 보냈다.
여느 순례자들이 다 그렇게 인사하듯, 우리도 길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며 작별했지만 또다시 콴 할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다. 나는 선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콴 할아버지와 함께 노래 부르며 걸었던 이 짧은 순간은 서로에게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나눈 순간으로 명료하게 기억되리라는 걸 알았다. 나에게 있는 가장 최선의 것, 좋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것, 내 안에 있는 것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왜곡 없이 가닿은 신비로운 순간. 뜻밖의 인연과 마음을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이 길을 나는 더 사랑하게 되었다.
오세브레이로는 고도가 거의 1300미터쯤에 있는 산에 들어선 마을이다. 드디어 갈리시아 지방으로 향하는 길목, 가파른 오르막을 접어들었다. 지대가 높아 안개가 자주 낀다고 했는데 운 좋게도 날씨가 좋았다. 산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산에도 봄이 이르러 여기저기 노랗고 붉은 기운이 드러나고 있었다. 산길목에서 지용도 우연히 다시 만났다.
산 아래에 우리가 지나온 길이 어렴풋이 보였다. 다른 순례자들도 저 길을 따라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할 것이다. 여느 때처럼 짐을 풀고 고단한 몸을 씻고 마을 언저리를 산책하면서 순례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를 갈무리할 시간이 되겠지. 이렇게 며칠만 더 반복하면 대장정도 마무리가 될 것이다. 이제야 순례자 생활에 익숙해졌는데 이렇게 며칠 뒤면 산티아고 입성이라니.
며칠 전부터는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생각만 하면 울컥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아직 깨달은 것이 없고 변한 게 없는데 이대로 길이 끝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부상이 있는 몸을 달래 가며 기어코 걸어, 변하는 풍경을 마주하면서 나는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 걸까.
산티아고 도착 전 마지막 고된 관문을 넘은 것을 기념하는 듯 마을은 들썩들썩했다. 우리도 별 탈 없이 고개를 넘어왔으니 하루를 기념하며 맛있는 걸 사 먹기로 했다. 갈리시아의 명물 문어! 거의 전투적으로 식사를 했다. 메인 메뉴 문어를 두 그릇이나 시켜 먹고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쩐지 헛헛해진 마음에 잠깐 동네 산책을 나왔다.
탁 트인 공간에 혼자 앉아 앞으로의 여정이나 미래 일랑 툭 놓아버리고, 나는 여기 있는 나에게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말해주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할지라도 매 순간 내가 했던 선택은 나에게 최선이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잘 감당해 왔다. 무언갈 깨닫고 얻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나에게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그대로의 보잘것없는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돌아간다고 해도 괜찮아.'
모든 것에서 멀어져 완전히 혼자인 것을 느끼며 나를 허락해 주자, 비로소 자유로움이 찾아왔다. 외로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 되는 느낌이 들며 내가 자연인지, 자연이 나인지 모르겠는 기분. 혼자이지만 모든 것과 함께 있는 충만한 기분이 들면서, 그날 밤 나는 나를 이곳으로 부른 길에게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