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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Oct 18. 2022

나의 노래를 부르자

소심하고 겁 많은 여자 사람, 순례길에 가게 된 이유



그런 날이 있다. 불현듯 내 삶을 알아채는 순간. 내가 중요한 걸 외면하고 어디로부터 멀리 떠나온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


무난한 일과였다. 특별히 힘든 것도 없었고 하늘은 푸르렀고 여느 때처럼 바빴다. 정신없이 한바탕 일을 쳐내고 의자에 앉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쏜살같이 박혔다. '괜찮아? 나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순례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스페인 여행 책자를 뒤적이다가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소개되어있는 글을 보고 나는 매료됐고 언젠간 이 길을 가야지 마음먹었다. 800km가 되는 길을 배낭 하나 메고 매일 꾸준히 걷는다는 심플하고도 매력적인 소개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 뒤 나는 정말 순례길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끊게 됐다. 불현듯 찾아온 기분에 사로잡혀서.


 참 쓸데없는 거 챙겨 왔다 싶어 도중에 버린 것도 있다

티켓을 끊어놓고 매달 월급을 조금씩 쪼개 필요한 준비물을 샀다. 배낭, 침낭, 신발 등등. 소심하고 겁 많은 내가 혼자 떠난다고, 혼자? 막상 출국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불현듯 찾아온 생각에 홀린 듯 퇴사 후 순례길행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출국 2주 앞두고는 거의 겁에 잡아먹혀서 비행기 티켓을 취소할 뻔했다. 

 

나는 정말 겁 많고 소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있으면 불안해하는, 혼자 여행하기엔 너무 최악의 조건만 갖춘 사람이라 아직도 내가 그 길을 어떻게 걷기 시작했고 끝끝내 다 걷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떠난 길에서 나는 늘 길 위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였고, 보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나와 마주하고 울며 또 웃으며 비를 뚫고, 안개를 헤치고, 몇 번의 언덕을 넘었다.


한 번도 순례길에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다녀온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왜 아직까지 순례길이 그리운지, 대체 그 힘들고 고된 여정이 왜 좋은지 묻는 친구들에게 명확하게 대답해줄 말이 없다. 순례길은 걸으면서 한 번, 다녀온 후 돌아보기로 또 한 번 걸으며 다른 마음을 길어올린다 했다. 누구에게나 보여주고 싶었지만 또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까지 꺼내어 나의 민낯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시간. 그리고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조금은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정을 정리한다. 마침내 자신만의 노래를 불러보고자 하는 순례자가 길 위에 오르길 덤으로 바라며.




마지막으로 이 길을 걷기로 결심한 날과 닮아있는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일부를 옮겨적으며, 약 40일간의 순례 여정, 시작!


보통 때 우리가 내면의 말을 듣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언제나 떠들썩하고 너무나도 많은 말이 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다만 그것은 세계의 끝, 죽음으로부터 울려오는 까닭에 젊은이에게는 너무 멀어 닿지 않고, 나이 든 이들에게는 너무나 가까워 그들을 초조하게 한다. 그것은 슬픈 일이다. 출발하는 이에게는 필요한 지도가 주어지지 않고, 결국 엉뚱한 곳에 도착한 이에게는 처벌처럼 주어진다는 비극.
하지만 어느 비일상적인 때가 되면 젊은이에게도 내면의 목소리는 크게 들려온다. 느슨하던 정신이 깨어나는 때, 오랜 시간 정성 들이고 기대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허탈함과 다급함이 나를 엄습하는 때, 분노와 슬픔 속에서 서늘함을 느끼는 때, 그래서 결국 깊은 고독 속으로 홀로 침잠해야만 하는 때가 도래하면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듣게 된다. 세상의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이 가라앉고 사방이 고요해지는 시간. 목소리가 말한다. 그것이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은, 그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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