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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Mar 25. 2024

달려야 하니

말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지나갑니다."


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길을 내어 주었다. 성큼 다가온 초여름 날씨의 일요일을 즐기는 러닝크루들이다. 여섯 명이 모여 뛰기에는 조금 좁은 인도지만 거침없는 그들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삼삼오오 모여서 달리는 러닝크루들을 자주 만난다. 남녀노소, 달리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16년 전이다. CEO가 마라톤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당시 부서장이 직원 100여 명을 여의도에 집합시켰다. 본인도 마라톤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만들기 위함이었는데. 당시 회사에는 진급을 위해 마라톤을 해야 했던 말 못 할 고충을 갖은 자들이 꽤 많았다. 진급을 원하는가? 그럼 뛰어라.


관리자가 되려면 달려야 한다니.


선배들의 완벽한(?) 충성심에 압도된 나도 그 무리에 포함됐다. 생애 첫 마라톤대회 참석이었다.


부서장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불편했을 선배들은 조금의 저항 없이 토요일을 반납했다. 볼멘소리와 불평이 끊이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부서장 앞에서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10km야 달리거나 걸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직장인에게 토요일 달리기가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자고로 토요일 오전은 허리와 엉덩이를 최대한 침대에 밀착하고, 사회와 가정에서 제 스스로를 격리시켜야 하는데 말이다.


착하고 순종적인 선배들은 부서장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각자의 비기를 준비해 왔다. 달리는 중간에 포기를 선언하고 원점으로 돌아오겠다는 사람, 절대 뛰지 않고 걷다만 오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스타트 라인 가장 뒤에 선 뒤 총성이 울리면 그대로 집으로 가겠다는 조금 더 세부적인 계획을 세운 이도 있었다.


"아니요. 이것은 미친 생각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토요일에 강제 참석이라니요."


누군가는 한 마디 할 줄 알았다. 부서 막내인 내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복화술을 이용해 그저 속으로만 삼킬 뿐.


주말의 마라톤 동원에 불만이 많았던만큼 나도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최대한 빨리 뛰고 집에 가버리자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혈기왕성한 20대 사원이 가질만한, 그리고 시도해 봄직한 계획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기도 했다.


농구, 축구 동호회를 즐기던 때라 체력은 자신이 있었다. 운동을 한 번 하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축구든 농구든 두 세 게임을 쉬지 않고 뛸 때였다.


잘 뛰기는 하지만, 잘 뛰는 방법은 모를 때이기도 했다. 나이키 코르테즈를 신고 10km 달리기를 하겠다는 무모함도 탑재되어 있을 때다.


웅성웅성. "탕~“

총성이 울리자마자 단거리 레이스를 하듯 땅을 박차고 나갔다. 뒤통수가 따갑다. 오버페이스를 걱정하는 시선을 느끼면서도,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에 충실했다. 자동차의 전유물이었던 회색도로를 뛰어 보니, 나름 발에 닿는 아스팔트의 질감이 괜찮았다. 몸을 스쳐 지나가는 공기에 한강의 비릿함이 묻어 있었다.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싫지 않았다. 공을 드리블하느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패스 할 곳을 분주히 찾지 않아도 되서 그저 달리기만 하면 됐다.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조금씩 숨이 찼다. 달리고 싶지만 뛰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로 달리는 중에는 절대 걷지 않겠다는 책임감이 있다는 어느 작가님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최근에 읽은 글이다. 아는 만큼 보이리라. 그때는 달리기에 존재하는 책임감과 신성함을 생각할 겨를이 없던 때다.


나는 걸었다. 뛰었다.

힘들면 걷다가 다시 뛰었다.


그냥 원점으로 빨리 뛰어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뛰고 걷기를 반복하며 원점에 돌아오니 5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계획을 달성했다는 승리감에 만족하며 잽싸게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당연히 회사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점심은 이곳에서 먹지 않아도 되겠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기분 좋게 지하철에 탑승했다. 토요일 오전을 달렸으나, 토요일 밤도 달려주리라~마음이 한껏 들떴다.


따뜻한 봄날의 오후는 세상을 금색으로 물들였다. 아직은 앙상한 가지들도, 풍성하지 못한 잔디들도 모두가 봄날의 햇빛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나갈 시간이다. 잠시 누워 TV를 보던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 모지?'

이상했다. 종아리가 너무 아프다. 발 뒤꿈치를 바닥에 댈 수가 없다. 저릿한 허벅지의 묵직함은 티도 나지 않는다. 종아리와 족관절 근육이 상한 모양이다. 걸을 수가 없었다. 나이키 코르테즈가 문제였다. 주법을 무시하고 제 맘대로 뛰기도 했다. 10km를 내내 단거리주법에 용이한 포어풋(앞꿈치를 먼저 딛는 주법)으로 뛴 탓에 종아리와 슬관절의 근육이 제대로 상해버렸다.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성공한 대가로 일주일을 사무실에서 절뚝였다. 40분대에 들어온 막내를 칭찬하는 선배들에게 영광의 상처를 들킨 순 없었다. 상처 입은 종아리 근육의 아우성을 모른 척해야 했다. 그것이 더 곤욕이었다.


지독하게 싫었던 첫 만남을 뒤로하고 이제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근육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갖고 정확한 주법으로 달린다. 뇌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오감에 집중한다. 명상의 효과는 덤이다. 달릴수록 뇌는 휴식을 취한다. 참 신비롭다.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에너지를 축적한다.


의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달리기는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운동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고령 마라토너 페냐 크라운은 "마라톤은 나에게 부작용 없는 약과 같아요. 언제나 울적할 때 달리면 웃으며 집에 올 수 있었으니까요. 늙었다고 주저하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도전해야 해요."라며 달리기의 에너지와 도전정신을 극찬했다.


나는 요추 디스크가 아주 못생기게 신경을 누르고 있다. 근육운동으로 완성하지 못하는 코어운동은 달리기를 통해서 관리한다. 몸에도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다. 달리기 시작한 후로 디스크로 인해 걷지 못하는 빈도가 대폭 줄었다. 허리관리를 못한 나머지 늦은 밤 바닥에 누워 꼼짝달싹을 못해 소방관님을 귀찮게 한 적이 있었다. 이제 바쁘신 분들을 성가시게 할 일은 없다. 세수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다가 그대로 욕실 바닥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할 일도 없다.


갑자기 찾아온 초여름 날씨에 뛰는 이들을 보며 잠시나마 옛 기억을 꺼내 본다. 달리기 참 좋은 날씨다. 조던 러닝화를 신고 나가 조금 뛰고 와야겠다.

습습후후~


또다시 나이키 코르테즈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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