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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Jun 04. 2024

뚜비뚜바 뚜뚜빠 뚜비뚜바 뚜뚜빠

WWF 슈퍼스타즈

  보통의 이유였지요. 아이를 혼냈습니다. 게임이 원인이었어요. 5학년이 된 아이는 다른 또래들처럼 게임을 아주 좋아합니다. 조금씩 거짓말도 할 줄 아는 나이지요.


 부모님 세대 보다 아이 세대와의 격세지감이 큽니다. 디지털이 완전하게 자리 잡은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디지털 적응력은 상상 이상이죠. 자칫 방심(?)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습니다. 같이 플스 같은 게임을 하다 보면 저보다 패드컨트롤이 좋을 때도 있어요. 즐거운 놀이기는 하지만, 적절한 디지털과 랜선 사용의 기준은 늘 고민스러워요.


 저는 아이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세대의 취향을 존중해요. 아이의 손에서 폰을 빼앗고 아예 폰에 대한 리스크를 회피하는 방법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시간이 걸리고, 어렵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폰을 제어하길 바라지요.


어른도 아이일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오락실이 몇 개씩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어 사용하는 꼬마보다 몸집이 큰 오락기가 있던 곳이지요. 아날로그 스틱을 잡고 버튼을 누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습니다. 불량청소년이 가는 곳이라는 학교의 프레임 탓에 자유롭게 다니지는 못했지만요. 당시 오락실의 케케한 냄새와 전자기기의 냄새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리워요.


 처음으로 엄마 아빠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방 안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온통 머릿속에는 오락실의 수많은 게임 영상뿐입니다. 특히 <WWF 슈퍼스타즈> 게임에 빠져있었죠. 결국 참지 못하고 엄마의 지갑에서 500원 동전을 슬쩍하는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안타깝게 200원 밖에 못 쓴 상태에서 형에게 걸려 집으로 돌아갔지만요. 500원이라도 다 썼다면 억울하지나 않....


 제가 5학년. 지금의 제 아이와 같은 나이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게임을 좋아하던 저를 위한 회유책으로 아빠는 가정용 게임기인 패밀리, 슈퍼겜보이 등을 사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사용하는 시간을 정해두고 조금씩 제어법을 익혀나가게 하셨죠.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던지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게임기를 정리할 때면 아쉬움 투성이었습니다.


 폰게임의 빠른 속도와 변화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아주 강한 도파민을 제공합니다. 가상공간에서 나와 현실로 돌아왔을 때 잠시 멍해지는 건 단지 기분 탓이 아닙니다. 빠르게 생성된 도파민의 빠른 소실로 인한 의학적 증상이에요. 아이가 스스로 제어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끔 아이가 게임 속 득템에 환호성을 지르며 아빠에게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걸면 저는 그 이야기를 다 받아줍니다. 아이의 놀이와 즐거움을 최대한 존중해요. 물론 너무 게임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당신을 따라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기다립니다. 아이의 성향과 학습은 모두 자신의 아비를 보고 배운 것이겠지요. 제가 우선 마음을 정하고 굳건하게 기다린다면 아이는 성장할 겁니다. 물론 몇 번의 시행착오는 필요하겠지요. 정해진 게임시간을 초과하여 사용한 아이는 핑계가 필요합니다. 폰이 켜져 있었다는 등, 폰의 사용시간이 잘 못 계산됐다는 등 횡설수설을 늘어놓아요. 아이의 모습에서 어린 날의 제가 오마쥬 됩니다. 이 녀석이 저의 장점만 가져가진 않았겠지요. 귀여운 아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편해요. 


"선생님 저희 아이들은 이런 거 저런 게 문제인데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그럼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고쳐야 합니다. 훌륭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인생의 저력> - 판덩 지음 - 중에서


 게임이나 숏츠 플랫폼을 사용할 때 나오는 도파민에 대해서 아이와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이해하고 수긍하더군요. 지난 대화를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폰 사용시간을 초과하고, 나름 그럴듯한(하나도 안 그럴듯한) 핑계를 댔던 녀석에게 독서를 제안했어요. 도파민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는 독서만 한 것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지루할 만큼 느리지만 어느새 깊게 빠질 수 있으니까요. 느리지만 쉽게 휘발되지 않는 즐거움입니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한 아빠는 마음이 불편해요. 슬쩍 방으로 가 봅니다. 잠 자기 전 책을 꺼내 읽고 있습니다. 모른 척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합니다. 입이 툭 튀어나온 채 책을 읽고 있는 녀석이 참 고맙네요. 크게 소리치고 아이를 혼내지 않아 다행입니다. 아이에게 차분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아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습니다. 행동의 개선을 위해 혼내는 것이 빠른 길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멀리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아빠입니다. 처음 해봐요. 아이도 처음인 것이 많겠지만,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답답하고 화가 날수록 그 감정이 큰 목소리와 격앙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게 노력하려고요. 아이도 충분히 스스로 사고할 수 있습니다. 변화는 아이가 아니라 제가 우선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결과가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남을 책망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원인과 결과를 찾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것이 가족이라고 다를 리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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