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
낯선 단어예요. 제가 보내온 시간임은 틀림없는데, 어쩐지 어색합니다. 제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나이쯤 되니 시간을 먹는 것이 싫은가 봅니다. 지난 10대와 20대, 30대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요.
젋음은, 추억은 까도 까또 새로 나오는 양파 같지요. 다양한 새로움과 열정적인 에너지가 있습니다. 자꾸 까다 보면 눈이 매워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요.
아름답고, 아련합니다. 푸른 바다가 만드는 윤슬에 몸을 던집니다. 그렇게 바다를 배워요. 짜고 쓴 바닷물의 넘실대는 중력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파도를 이겨보겠다며 억지 수영을 해 보기도 하지요. 온 힘을 다해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지만, 몸은 잘 나가지 않습니다. 이내 힘이 다하고 호흡이 차올라요. 바람을 거슬러 오름을 포기합니다.
이제 파도에 몸을 맡겨요. 한참 힘을 빼고 나니 파도와 어울리게 됩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알몸을 드러낸 용기로 몸은 빨갛게 달아 오르죠. 피부가 벗겨지며 작은 상처가 남기도 합니다.
서른 살이 되고부터 파도에 몸을 실었어요. 아빠라는 고귀한 타이틀을 얻었고, 가장으로서 의식주를 해결했습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주저하지 않았어요. 일상 속에 있는 낯선 행복을 깨닫습니다. 삶의 가온에서요. 감사한 시간입니다.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유독 지난 저의 30대가 아쉽습니다.
부조리와 불합리에 고전했던 젊은 시절의 회색기억에 비해, 많은 시도와 가능성이 수 놓은 밤하늘의 화려한 폭죽에 비해 30대는 결코 생각이 짧지도, 경험이 부족하지도 않았습니다. 생각은 가치관이 되었고, 경험들은 삶의 중심을 잡아주었지요. 그 초석이 모두 지난 30대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유독 30대에 아쉬움이 많은 걸까요?
30대는 어제 같습니다. 상징적으로 추억하는 여행이나 사건이 아니에요. 단순한 기억의 어제 같습니다. 행동과 생각들이 또렷하게 이미지화돼요. 10km를 넘게 달리면서 미친 듯이 뛰었던 심장박동이, 여행의 중심에서 느꼈던 낯선 나른함과 여운이 아직 그대로입니다.
환희에 젖었던 날의 충만했던 기쁨과 보람을, 심장을 베인 듯 아팠던 날이라면 그 슬픔과 절망을 기억하죠. 많은 감정과 결과물들이 반복되었던 어제는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기쁠 때의 감정에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슬픔은 그냥 받아들여도 되는 감정인 것을 미처 몰랐지요. 그렇게 열심히 뛰지 않아도, 그렇게 열심히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어제를 통해 배웠지요.
조금 쉬어도 됐을 텐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산을 오를 때 밑에서 보면 정상에 다 온 것 같아 이제 정상이다 하고 발길을 턱 내디디면 오르는 길이 탁 나오는 거야. 다시 발걸음을 내디디면 또 길이 나오고. 다 된 것 같아도 또 남은 게 있고 또 남은 게 있어. 인생이란."
<풍수전쟁> 중에서 -김진명-
내일을 생각해 봅니다. 어제가 될 오늘을 생각해 봅니다.
마흔을 넘어선 내일.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지금의 시간은 또 다른 청춘과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추억되겠지요?
오늘이 힘들다고 지치지 마세요. 지금 가고 있는 여정 모두가 우리의 정상입니다. 묵묵히 걸어가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호흡하면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