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은 상하지만, 자존감은 지킬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by 새로


자신이 평균보다 낫다고 여기는 경향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다.

- 토마스 길로비치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중에서-


‘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오는 워비곤 호수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평균 이상으로 묘사된 데에서 나온 말이에요. 자기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생각하게 되는 오류 인식을 뜻합니다. 토마스 길로비치의 이론에 따르면 70프로 이상의 직장인들이 동료들보다 본인이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평균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이에요. 자기 과신 효과(overconfidence effect)라고도 합니다.


풋내기 시절 함께 근무한 무능한 선배 한 명에게 받았던 반면교사는 저를 꽤 책임감 있는 직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선배처럼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태도가 되어 나름의 결과와 성과도 만들었어요. 소위 말하는 부서의 에이스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성취와 칭찬에 익숙해지고 나니, 남들의 성과는 ‘운’으로 치부하고 나의 성과는 ‘능력’이라고 자찬하게 시작해요. 오만해집니다. 나에게는 관대한 기준을,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거예요. 오만과 편견에서 만들어지는 자기 과신 효과는 이렇듯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핑계가 많아지고, 다른 이의 성과를 깎아내려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보지 않습니다.

셀카를 찍었어요. 근데 폰에 보이는 내 사진이 영 맘에 들지 않아요. 나의 생각과는 다른 얼굴이 찍혀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셀카를 지우고, 필터링이 들어간 앱을 이용해 다시 셀카를 찍어요. 이왕이면 더 이쁜 것이 좋습니다. 필터링이 들어가고 보니 이제 좀 내 사진이 맞는 것 같아요. 내 생각 속에 가지고 있는 더 어리고 , 더 생기 있는 딱 그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폰 속 사진은 실제의 나의 모습이 맞아요.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이겠지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입니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나의 이미지와 폰 화면에 비친 모습은 달라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 과신 효과로 얻는 장점이 있겠지요. 긍정적인 마인드 셋의 효과는 분명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뚜렷한 근거가 없다면 그 주관적인 확신은 독단입니다.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에게도 피해를 주게 돼요.


우리가 유의미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인정입니다. 어느 부서와 그룹이든 나보다 뛰어난 역량과 노력으로 업무를 대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성과도 당연히 나보다 좋을 수 있어요.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상사, 매번 업무 스타일로 부딪히는 동료들이지만, 그들에게는 나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날 수는 없어요. 감정적인 선입견과 의도적인 태도는 사실을 은폐합니다.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때는 나에게 상처가 돼요. 자존감에 상처가 납니다.


조금이라도 나를 객관화할 수 있었다면 20년 가까운 사회생활에서 마음의 상처를 조금은 덜 받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일이 아니었으니 자존감은 지킬 수 있었을 텐데요. 직장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서 그리는 긍정적인 자화상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해요.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워비곤 호수 마을에 사는 등장인물은 아니니까요. 물론 본인의 자존감을 낮추며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에서는 누구도 나를 구원해 주지 않아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릴 건 아닙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하죠. 워비곤 호수 효과와는 다른 측면입니다. 태도에 대한 것이니까요. 과도한 자기 과신 효과로 우리가 얻을 것은 결국 자기 합리화에 필요한 핑계뿐입니다. 자신을 믿는 것과 과신하는 것은 다르겠지요. 자존감을 가지고 거울을 볼 수 있는 나의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셀카에 보이는 주름 따위는 걱정하지 않고, 그냥 활짝 웃는 저를 담아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