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th 갑자기 서평 - 연을 쫓는 아이
현관문을 밀고 나가려다 말고 몸을 돌려 신발을 벗었다. 오늘은 책을 읽고 만지고 싶다. 패드의 편의성을 따라가진 못하지만 아날로그만이 갖는 매력이 있다. 레트로든 뉴트로든, 종이 질감이 갖는 특유의 즐거움이 있으니까.
두 시간 정도 전철을 타야 한다. 거실 한편 눈에 미치지 않는 높이의 하얀색 이쁜 문이 달린 책장을 연다. 책에 쌓인 먼지는 꼭 나의 게으름 같아서 아끼는 책은 꼭 서랍장에 놓아둔다.
노래를 듣거나, 예전 사진을 볼 때면 그때의 감정과 기쁨, 시련 같은 마음이 하나로 뭉쳐지면서 애틋하게 가슴과 뇌리에 쾅하고 박힐 때가 있다. 추억이라고 부르는 감정인데,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노래와 사진 말고도 한 가지 더 있다. 우연하게 읽었던 중학생 시절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그랬고, 고등학생 때 읽었던 <B급좌파>가 그랬다. <상실의 시대>는 스무 살 내 마음으로 보았던 모든 회색빛을 담고 있다.
서랍장 한편에 두툼한 책 한 권이 보인다. 반가운 책이다. <연을 쫓는 아이>를 읽은 건 10년도 더 된 거 같다. 내게 아프가니스탄은 안타까운 전쟁이 이어지는, 가본 적이 없는 먼 나라일 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을 단순히 탈레반, 테러와 관련지어서만 이해하고 있던 나에게 수니파, 시이파의 종교전쟁은 가진 자들의 이권을 위한 권력 다툼.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이야기는 교양서였다. 강대국과 기득세력 사이에서 전쟁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볼 동기와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연을 쫓는 아이>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를 연독하고 나서야 전쟁국가에서 태어난 그들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그들의 삶의 안타까움을 공감했다.
<연을 쫓는 아이>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소설이 정치학, 국제학에 제한되기 때문은 아니다. 이 책은 국제관계, 종교전쟁, 테러가 존재하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이야기 속 소년들의 뜨거운 우정, 그리고 안타까운 헤어짐들이 매우 개연성 높은 이야기로 읽는 이의마음을 울린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아미르의 죄책감에서 발생된 배신으로 핫산은 결국 집에서 쫓겨나고, 이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한다. 이후 미국 이민을 선택한 아미르의 가족과 달리 가난했던 핫산은 그대로 고향에 남겨지게 되고, 둘은 헤어진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미르는 작가로 성공한다. <파친코>의 선자, 솔로몬, 모자수가 그러했듯, 아미르의 가족은 치열한 삶을 이어가며 이민 이주자로 정착한 듯 하지만, 아미르는 여전히 핫산을 잊지 못한다. 핫산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은 아미르를 결국 고향으로 향하게 하고 그곳에서 두 소년들의 우정은 다시 이어진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때는 거의 10년 전이다. 회사 업무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식과 정보에 눈을 돌릴 여유조차 없던 시절이다. 사람들에게 찢기고, 긁히고 다치는 바람에 사람에 대한 신뢰 자체가 증발된 때이기도 하다. 그때 이 책을 선물해 준 친구가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나의 무지가 너무 부끄러워 가본 적 없는 먼 나라의 전쟁에 대해 공부하며 책을 읽었고, 책을 덮을 즈음에는 아미르와 핫산의 우정에 마음이 먹먹해 여운이 깊었다. 내게도 핫산 같은 친구가 있음을 감사하고, 안도했다.
나를 지탱해 주던 친구의 존재로 일 년이 겨울이었던 그때를 버티어냈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책이지만 책의 깊이는 그대로다. 늘 옆을 지켜주며 나의 말을 들어주던 그 친구가 여전히 그립다. 여전한 그의 마음과 당연한 그의 기도에 감사한다. 여전함은 대개가 순간적이고, 당연함은 익숙함에 잊히기 쉽다. 그의 귀한 마음을 내 기억과 마음에 다시 새긴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