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th. 미리 신년계획
방학을 맞이하는 기대에 어린 꼬마는 기분 좋게 동그라미 계획표를 채운다. 빡빡한 시간단위로 공부를 채워 넣는 녀석부터 하루 계획표가 온통 노는 것으로 채워져 선생님께 혼이 나는 녀석까지. 동심을 담은 꿈과 놀이가 동그랗게 그려졌다.
어른이 되고는 매년 1월 계획을 세운다. 동그라미 하루 일과표는 아니지만, 나름의 루틴을 정하고 신년의 목표를 설정한다. 목표를 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잊는다. 실패한다. 그래서 오늘은 한 달 먼저 시작해 보려고 한다. 실패를 기정사실화 하는 계획은 아니지만, 실패를 염두에 두고 미리 시작해 보려고 한다. 혹시 실패하면, 분위기에 이끌려 다시 시작해 보려고.
올 해는 유독 환경의 변화가 컸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서 발령으로 기획업무를 맡게 되면서 지난 직장생활에 만들어진 모든 루틴에 변화를 당했고, 삶의 주도권을 뺏긴 듯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이제는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 나이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성장판이 열려있다는 것을 깨달은 한 해이기도 했다.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부서장에게 요청을 해 둔 상태인데, 내년 거취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회사 생활을 했던 20년 동안 예상대로 진행됐던 인사발령은 없었으니까.
야근이 많아 회사에 빼앗긴 시간 때문인지 올 해는 유독 빠르게 지났다. 헛헛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신청한 브런치에 글쓰기 승인이 나면서 9월부터는 그야말로 아크 원자로를 가슴에 달고 보낸 느낌이다. 정말 빠르다. 그 와중에도 브런치에 남긴 흔적과 이야기들이 있어 다행스럽다.
일기와 병행할 엄두는 나지 않아, 모든 글쓰기는 브런치로 대신하고 있다. 혼자 읽는 글이 아닌 이유로 솔직함과 당돌함은 다소 떨어지는 글이지만 대신 나를 객관화하는 노력과 신중함을 얻었으니 그로써 만족이다. 계속 유지하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나가려고 한다.
이동수단에서 하는 독서가 불편하지 않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면서 상당 시간을 책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새해에는 넓은 범위로 확장해서 생각과 이야기를 읽으려고 한다.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문체와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싶다. 좋게 생각하면 사실 좋은 점이 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만 할 수는 없다. 달과 별이 뜨는 밤하늘도 나쁘지 않으니.
미라클 모닝을 실천해 보니 확실히 하루가 풍족해진다. 아침에 등 밀려 시작하며 회사로 내쫓기던 하루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피동적인 출근을 능동적으로 바꾼다. 이젠 평일에도 나의 시간이 생겼다. 출근 전 두 시간의 기적이다.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직 세상이 잠을 깨기 전의 적막함과 고요함과 함께 하는 커피 향이 참 좋다. 의지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조금 이르게 밤을 맞이해야 한다.
역행자의 22전략 (2년 동안 2시간 읽고 쓰기)이 23년 독자들을 휘몰아쳤다. 계획을 되새기고 인지하기 위해 나의 동그라미 계획표에도 이름을 붙여봤다. 나의 24년 계획은 222 전략이다. 하루 2시간 책을 읽고 쓰고, 한 주 2틀 주락을 즐기고, 한 달 2십km 러닝을 하려고 한다. 유지가 된다면 몸도 마음도 더 나은 모양을 만들 수 있을 테다. 결과물을 위한 목표는 하루의 루틴을 이어 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루를 오롯이 즐기는 것이 먼저다. 인내하고 감내해야 할 신년계획이 아니다. 하루를 더욱 즐기고 싶은 마음에 그려보는 나만의 동그라미 계획표다.
먼저 시작하자.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