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이치나 말을 본래 뜻과 다르게 해석함.
나는 처음에 당연히 내가 우울증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단어가 내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상상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밖을 나가고, 운동을 하고, 동아리를 들어가고, 소개팅에 나가면 내 삶은 조금은 정상에 가까워질 거라 믿었다.
실제로 웃을 수 있었다.
농담에 맞장구치며 따라 웃을 수도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도 겉모습은 얼마든지 “괜찮은 사람”을 흉내 낼 수 있었다.
순간의 활기는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착각을 주었다.
정상이라는 틀 안에서,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잠깐이나마 허락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언제나 귀갓길에서 허물어졌다.
버스 창에 비친 내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고,
귀에 걸린 이어폰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도,
가슴속에서는 오히려 비명처럼 울리는 공백이 들려왔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던 손가락이 유난히 무거웠다.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
마치 세상의 소음이 한순간에 잘려 나간 듯 고요가 쏟아졌다.
그 고요 속에서 웃음은 빠르게 증발했다.
몸은 납처럼 가라앉았고,
그동안 붙들고 있던 활기는 껍데기만 남은 장식처럼 흩어졌다.
사람들 속에서 보낸 시간은 오히려 내 안의 고독을 더 크게 증폭시켰다.
바깥의 불빛이 강할수록, 집 안의 어둠은 더 짙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많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분명 어딘가가 어긋나 있었다.
그러나 주변은 정반대의 말을 반복했다.
“넌 멀쩡해 보여.”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잖아.”
“왜 그런 말을 해. 넌 아무 문제없어.”
가족도, 내가 가장 신뢰하던 이들도, 내게 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여주었다.
나는 그 딱지를 믿고 싶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다고.
그래서 그 틀을 좇으려 했다.
모범적인 학생, 책임감 있는 자식, 성실한 친구.
정상이라는 이름표에 가까워지려 애쓸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 거리감은 날카로운 실선처럼 내 가슴을 그었다.
“나는 그 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틀에서 벗어나 흔들리며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마다, 나는 더 깊게 외로워졌다.
돌이켜보면 그 흔들림은 오래전부터 시작돼 있었다.
어린 나는 사랑을 성적과 바꾸는 법을 배웠다.
상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 잠깐의 환한 표정이 있었다.
그 짧은 환희가 나를 숨 쉬게 했다.
그래서 더 공부했다.
그 표정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그러나 그 웃음은 금세 지워졌다.
조건이 붙은 온기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는 감정을 눌러 담는 법을 배웠고, 눈치를 보는 법을 익혔다.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잘하니까 웃는 거구나.’
단순한 결론은 마음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그 균열은 곧 자책으로 굳어졌다.
‘결국 내 탓이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명했다.
반복해서, 오랫동안.
공대에 들어간 뒤에도 나는 같은 방식을 이어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늦은 저녁의 공기 속에서,
나는 노트를 펼쳤다.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글씨는 정교했고, 색깔은 질서 정연했다.
한 페이지를 덮을 때마다, 잠시나마 안심이 찾아왔다.
마치 내가 무너지는 걸 막아주는 보호막처럼.
그러나 그 모든 장면에는 늘 음악이 깔려 있었다.
나는 노래가 없으면, 소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조용한 방에 앉아 있으면, 머릿속은 오히려 더 산만해졌다.
백지의 노트 앞에서 펜이 움직이지 않았고, 정적은 나를 무력하게 눌렀다.
그래서 언제나 배경음이 필요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가사가 흐르든,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든,
그 울림 속에서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내게 음악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일상의 BGM이었다.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조건’.
몰입이 찾아올 때는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갔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문제를 풀고, 정리를 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적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 몰입은 언제나 예고 없이 꺼졌다.
불빛처럼 꺼지고 나면, 남은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뿐이었다.
그 기복은 ADHD의 교과서적 그래프 같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단순히 ‘내가 이상해서 그렇다’라고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험은 예쁜 필기를 묻지 않았다.
그곳은 계산의 속도와 응용의 유연성을 요구했다.
나는 불안을 달래기 위해 정리했지만,
정리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에너지는 필기와 정리에 쏠렸고,
반복과 문제풀이의 시간은 늘 부족했다.
하루를 다 쏟아부어도 성적은 중간 언저리에 머물렀다.
결과는 초라했고, 자존감은 무너졌다.
그때도 나는 같은 결론으로 돌아가려 했다.
‘내가 게으른가, 의지가 약한가.’
그러나 몸은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작하려는 순간 얼어붙는 감각,
집중과 무기력의 극단적 기복,
과부하 이후 길게 필요한 회복.
이것은 단순히 나약함이나 의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기질과 내가 선택한 환경이 서로 맞물리지 못하고 어긋나 있었다.
나는 그제야 그것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