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직장을 잡으려니 쉽지 않더라고요. 6년간 미국에서 마케팅과 다른 업무인 의류제품 디자인개발과 생산 쪽에 있다 보니 다시 마케팅일을 잡기 쉽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하던 일을 한국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미국에서는 바이어로 있었고, 한국의 관련 업체들은 미국의 지사가 아닌 이상 대부분이 밴더업체예요. 세아, 한세 등등이 그런 업체들이에요.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에 공장을 가지고 제가 있었던 업체와 같은 바이어 업체로부터 OEM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죠. 벤더에 있는 분들은 바이어들보다 아는 것도 많고 전문적입니다.
롯데홈쇼핑 뷰티모델 촬영할때에요. 화장한 채로 비누로 세수를 해요.
즉, 저는 일반사람들에 비해서 많이 알지라도 그들에 비하면 전문적이지 못해요. 다행히 GAP의 한국지사에 입사를 했어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백화점에서 만나는 GAP은 신세계인터내셔널에서 프랜차이즈 개념으로 구매를 해서 파는 것이고, 한국에서 지사로 있던 GAP은 제품 생산의 관리를 맡아서 하는 곳이에요. 즉, 제가 있던 GAP과 우리가 사는 GAP은 같은 제품이지만, 다른 회사인 거죠. 그렇게 겨우 들어간 곳이지만 얼마 후면 이 회사도 없어진다는 것을 입사 당시 고지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어요. 베트남으로 이전을 한답니다. 중국도 물가가 올라서 다들 베트남으로 옮기는 당시에, 중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던 한국지사가 필요가 없어진 거죠. 베트남으로 옮기면 되니까요.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직장을 다시 구하면서 미국에서부터 했던 그림을 열심히 그리게 되었고, 그렇게 전시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싱귤러한의 터닝포인트가 되죠. 기존 한국의 전통적인 공예품에서 유화를 담은 인테리어소품 브랜드로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퓨전디자인으로 만들어 본 평상 한복입니다.
그렇게 시작을 하기 되기까지 그 기간 동안은 저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한 시기였습니다. 마치 23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삶이라는 나무를 심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준비작업 같았어요. 사실 실제로 저의 23살에는 이런 시도를 하지 못했답니다. 당시에 대학시절부터 시작한 방송일이 제가 갈 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못해본 것들을 이제 해 보는 것 같았습니다.
국비로 한복 학원에 들어가서 한복도 만들어보고, 다시 연기도 시작해서 단역배우도 해 보고, 홈쇼핑의 피부 모델이 되어 보기도 하고,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면서 협찬도 받고 광고비도 받고 거마비도 받으면서 인플루언서도 해 보는 등 참 많은 일들을 시작한 시기예요.
그렇게 저는 싱귤러한 제작업체에서는 작가님이 되고, 촬영장에서는 배우님, 모델님이 되고, 업체에서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직장에서는 부장님, 이사님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N잡러는 저에게 역사가 깊은 거 같아요. '어느 순간 직업이 여러 개가 되었어요'가 아닌 원래 하나에 만족하지 못한 성격이었던 거죠. 대학 때는 등록금 번다고 학교 다니면서 보습학원 영어강사하고, 방송일을 하면서 액세서리 만들어 팔고, 방송일을 하다가 안정적인 직장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간간히 영화의 단역을 하고, 홍보 마케팅일을 하면서 일간지에 패션칼럼을 쓰고,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던 2004년에 온라인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시작하고, 미국에 연수를 위해 갈 준비를 하면서도 직구를 해 보겠다며 홈페이지를 혼자 만들어서 1인 사업을 했었으니까요. 와~ 진짜 이렇게 나열을 해 보니 정말 많은 걸 했네요. 근데?! 뭐 딱 하나도 제대로 성공한 게 없는 것 같은... 슬프네요..
협찬받아 프로필도 찍어보고 다양한 경험도 해 봤죠.
N잡러의 장점은 영어에서 말하는 generalist와 specialist 중에 generalist가 될 수 있어요. 이것저것 조금씩은 하는 generalist인 거죠. 그래서 홈페이지도 혼자 다 만들고, 혼자 물건도 소싱해서 팔고, 혼자 홍보도 하고, 마케팅도 하는 거예요. 이런 경험들이 마케터로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체험단을 모집할 때 어떤 경로로 모집을 하고, 가이드는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 노출이 잘 되고, 요즘 팔리는 상품들은 뭐가 있고, 요즘 홍보하는 상품들이 어떤 것들이 있으며 등등 시장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더욱더 좋은 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필요한 것들은 제품 제공을 받아서 써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니 생활비가 줄어든다는 점이죠.
N잡러의 단점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시간에 쫓기듯이 바빠요. 직장 다니면서 블로그 하고 그림 그리고, 제품 제작해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물건 팔고 홍보하는 게 어디 쉽겠어요? 거기에 연애까지 하면 더 바빠지죠. 간혹 살림하는 남자를 집안에 들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살림하고 돈 벌어다 주는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까지 갑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라고 해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할 테지만요.
이렇게 한국에 귀국한 이후부터 쭈욱 8년을 해 오고 있는 게, 뭐 하나 오래 붙잡고 있지 못했던 제 성격상 대단하다 칭찬해 주고 싶고, 바쁘지만 어느 것 하나 놓고 싶어지지가 않고 오히려 요즘엔 국비로 파이선을 배워볼까 까지 생각하고 있답니다.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고 늙어 죽는 게 아닐까? 근데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걸까? 참 별별 생각이 다 들지만, 저는 거기까지만 생각해요. 정답은 없는 거라 앞으로 일을 계획하고 그대로 실천하고 그러다 보면 뭐라도 보이겠죠. 지금까지 순수익이 조금씩 오르는 것만 봐도 조금씩 해결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 요즘은 내가 일하는 만큼 벌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초기 세팅을 했고, 어느 정도 주문 회전이 되는 이 시기에는 싱귤러한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면서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 판판대로의 도움을 받아 면세점에도 납품해 보고 싶기도 하고, 전통문화상품으로 등록해 보고 싶고, 브랜드 K가 되고 싶기도 하고, 라이브방송도 더 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N잡러인 저는 오늘 하루는 브런치로 마무리를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