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연봉 그리고 연금
대한민국을 하나의 회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다양한 사업부에서 반도체를 만들고,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은 대한민국이라는 회사 내에서, 회사의 미래를 구상하는 '기획조정' 업무와 회사의 유지를 위한 '지원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업부가 실적을 올리면 회사 전체의 수익이 좋아지고, 그 회사의 구성원 전체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부의 성과가 부진하면 기획조정 부서와 지원부서도 영향을 받게 되어 연봉 동결, 복지 감축 등의 파급효과가 뒤따릅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업 방향을 설정하고 민간을 이끌었지만, 현재는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 구조로 변화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 중화학공업 중심의 성장 전략이나 외환위기 직후의 금융 구조조정처럼 정부가 시장의 흐름을 주도한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네이버와 같은 민간기업이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역할은 회사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기획보다는, 기존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이에 따라 공무원의 '성과'는 더욱 측정하기 어려워졌고, 공무원에 대한 경제적 보상에 대한 기준 또한 민간의 성장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의 연봉
공무원의 역할은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돌리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공무원의 업무 자체가 경제적으로 '환산'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경제적인 가치를 '직접적으로 창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이 열심히 일을 해 소위 말하는 '성과'를 낸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공무원에게 연봉과 성과급이라는 경제적인 보상으로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공무원의 연봉이나 수당, 복지는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성장과 그에 따르는 수익, 즉 국가 세입과 연동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2010년대 중반 이후로 명백한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장할 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과거처럼 엄청난 수준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2000년 이후, '통합재정수지'는 08년 경제위기 여파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를 기록했고 17년과 18년에 피크를 찍었지만, 19년부터 25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와 비슷하게 '민간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20년 90.5%로 고점을 찍고 22년과 23년 83.1%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통계를 파악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 수치입니다. 또한, 국가 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국채로 세출을 감당하기에도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재정 상황상 공무원의 연봉 상승이 힘든 환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도 한 몫합니다. 공무원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적인 시각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공무원이 '불쌍하다'는 동정 어린 여론도 생겨났지만, 여전히 '그래서 그 돈 받고 하는 게 뭐냐?'라는 인식이 아직도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라는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한 정권 입장에서는, 공무원의 인건비를 낮춰 영업비용을 낮추고, 대한민국 회사의 주주라고 볼 수 있는 국민들에게 표를 받기 위해 배당을 주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공무원 연금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에서 공무원 연금제도는 과거 공무원의 낮은 임금체계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민간기업에 비해 지금 연봉을 많이 줄 수는 없지만, '퇴직 후에 화끈하게 보상하겠다'라고 말이죠. 그 당시 공무원을 하셨던 분들은 마치 성장주에 투자하듯 대한민국이라는 회사를 위해서 일을 했고, 퇴직 후에 당시 약속되었던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2000년대 당시, 교사가 정년을 다 채우면 거의 300만 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교사 부부는 퇴직하면, 중소기업 사장이다'라는 말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는, 몇 차례 개혁 후 운용되고 있는 현재의 공무원연금의 수익률에 비해서 훨씬 큽니다. 현재 공무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9급으로 시작해서 5급으로 퇴직하면 현재가치 기준 약 200만 원, 7급~4급은 230만 원, 5급에서 고위공무원으로 퇴직 시 약 260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약 20년간 오른 물가를 고려한다면, 말 그대로 반토막인 것입니다. 공무원 연금의 수익률은 국민연금보다 못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회사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과거의 낮은 보수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의미를 가졌던 연금체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저출산은 한 몫합니다. 1970년에는 약 100만 명이 태어났고, 90년대는 1년에 약 60만 명 정도 태어났습니다. 2002년부터는 40만 명대로 줄어들었고, 2017년부터는 30만 명대, 2020년부터는 20만 명대에 진입하여, 2023년에는 23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구구조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공무원 연금의 구조 또한 극단적인 역피라미드 형태가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무원의 연봉이나 연금이 극단적으로 낮다고는 볼 수는 없습니다. "수도권이 아니라면", 공무원 부부도 지방에서 충분히 안정적으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수는 있는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일부 대기업과 은행, 공기업 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업황이 좋지 않거나, 불안정한 직장에 비해서는 아직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금이나 연봉의 대폭 인상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나, 근무환경의 질적 개선은 가능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주 4.5일제와 유연근무, 재택근무 활성화, 겸직 제한 완화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는 먼저 절대적인 업무량 조정이 이루어진 후에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