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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많사다

공무원과 인사업무

by freenobby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일은 조직의 유지와 성과에 큰 역할을 차지합니다. 단순히 개인의 능력과 관심사에 따라 적절한 업무를 배분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상체계를 효율적이면서도 공정하게 유지하는 것, 범법행위에 대해 적합한 징계를 부여하거나 이를 예방하는 것, 직원의 업무역량을 높이는 것, 내부 직원의 애로사항을 들어주는 것 등등 모두 인사업무와 관련 있습니다.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때에는 '인사? 그냥 시키는 대로 인사발령만 내면 되는 것 아닌가?', '인사팀은 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야근을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점점 인사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인사업무를 맡게 되면서 왜 매번 야근을 해야 하는지 또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인사는 '많'사였습니다.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다


인사업무를 하기 전에는 '우리 기관에는 사람들도 다 좋고, 평화로운 조직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업무를 맡은 후, 컴퓨터 안에 있는 자료를 찾아보면서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과 이상한 사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러 자료에서 등장하는 요주의 인물들은 인사업무를 시작한 후, 어김없이 대뜸 연락이 오거나 골치 아픈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 아랫사람에게 갑질해서 퇴사하게 만들어 놓고, 윗사람이 지적 한 마디 했다고 그걸 꼬투리 잡아서 갑질로 신고하겠다며 변호사를 대동하는 인간


- 돈 몇 만 원 더 받겠다고 규정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몇 달간 생떼를 쓰는 인간


- 안 되는 걸 수십 번 확인시키고 돌려보내도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다시 요구하는 인간


- 혼자 쉐도우 복싱하다가 피해망상에 젖어, 괴롭힘을 당했다며 신고하는 인간


- 자기 말 안 들어준다며 부모님을 데리고 오는 인간


- 퇴사 처리 후 번복하고 싶다며 새벽에 연락하는 인간


정신없이 일하다가 마주치는 장문의 민원 메일과 메신저, 갑자기 할 말 있다며 커피 한 잔 하자는 제안이 들어올 때면, 해야 하는 업무는 또다시 밀리고, 예기치 못한 감정소모와 더불어 해석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인사규정은 늘어나게 됩니다.


이런 민원성 업무 중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었습니다.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 간의 문제를 법의 테두리 내로 억지로 들여와서, 본질적인 해결은 해주지 못하고 서로 소모적인 논쟁과 요식행위만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이는 약자를 위한 규정이라기보다는 약자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의 공격 옵션의 역할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뒤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 규정을 들먹일 때면 '내 요구사항을 안 들어주면 너네를 끊임없이 괴롭힐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공식적인 신고라도 들어올 때면, 노무사 비용, 위원회 비용으로 최소 500만 원에서 1,000만원이 드는데, 냉난방비도 돈 없어서 낼 수 있니 마니하는 상황에서 이런 비용까지 깨지면 정말 허탈합니다.



규정이 너무 '많'다


인사업무를 처음 맡고, 숙지해야 할 규정을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업무를 할 때마다 인사 매뉴얼을 보면 새로운 규정이 계속 나와서, 대체 무엇을 우선 적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완벽하게 검토했다고 생각했지만 또 고려해야 할 다른 규정은 없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 대통령령, 행정규칙, 실무적인 업무규정, 관내 규정 등등 대략 30가지 이상이 있었고, 그 관계 또한 복잡했습니다. 내용은 또 얼마나 세부적인지, 예외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이걸 사람이 다 고려해서 적용가능할지 의문이었습니다. 수 십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의 다양한 케이스를 모두 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좀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챗GPT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하려면 최소 10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규정 자체도 문구상 애매한 것들이 많아, 어쩌면 GPT는 결국 인사 관련 규정을 정복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가장 머리가 아팠던 규정이 '호봉' 관련 규정이었습니다. 그냥 1년에 하나씩 올리면 되는 것 아닐까 싶지만, 호봉적용의 예외의 예외의 예외, 기간 계산 방법, 호봉 반영 기준, 한시적 예외규정 등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공무원 조직은 생각보다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신 분들이 많고, 이상한 사람들의 예외적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퇴사하기 전, 수십 년 간 호봉을 잘 못 계산해 왔던 매우 복잡했던 케이스를 발견하게 되어, 내용을 정리해서 후임자에게 넘겨주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공무원 호봉'으로 하나의 공무원 시험 과목을 만든다면 행정법 한 과목에 상응할 것 같습니다.


잡무가 너무 '많'다


인사업무는 간단한 행위만 해도, 딸려 있는 잡무가 너무 많습니다. 복잡한 규정에 비례하여,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싶은 절차와 작성해야 하는 양식들이 과도하게 많습니다. 당연하고 간단하게 결론이 나는 업무조차, 기초자료 작성, 서약서, 동의서, 위원회 의결서 등등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3년마다 있는 인사감사 준비를 위해, 종이로 된 자료만 해도, 트럭 몇 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가장 잡무가 많은 업무는, 성과평가와 승진, 채용 관련 업무인 것 같습니다.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업무들입니다. 어떻게든 좀 더 공정하고 합리적이게 '보이고자' 쓸데없는 자료들을 무한정으로 생산해내야 합니다. 어차피 결정은 자료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들의 주관적인 생각과 수 십 년간 내려온 조직 내 관습에 의해 내려지는 것인데 말이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일찍 승진시키겠다며 만든 제도를 이용해 연차만 쌓인, 승진이 누락된 사람들 승진시키려는 걸 보면서, 정말 무의미하다 싶었습니다.


결국 자료는 그저 그런 관습적이고 주관적인 결정들을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합리적인 검토와 성과위주의 보상, 인사업무의 공정성 등을 강화하기 위한다는 미명아래, 형식적인 규정과 절차와 양식만 무한증식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려할 게 너무 '많'다


공무원이 약 100명 정도 되는 그리 크지 않은 기관에서 인사업무를 했지만, 생각보다 발령을 낼 때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개인의 보직경로나 연차 등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각 개인의 상황과 조직 내부에서의 인간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가정에 별일은 없는지, 결혼은 했는지, 출산계획은 있는지, 어디에서 일하기를 원하는지,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는지 등 개인적인 내용들을 소문으로 듣거나 직접 상담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에 더해서, 절대 같은 부서에 두어서는 안 되는 관계도 고려해야 합니다. 각 부서장들은 '절대 이 사람은 안된다'라고 요구합니다. 또 과거에 왜 이렇게들 서로 싸웠는지, 보낼 수 있는 부서가 아예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보내기라도 하면, 직원들의 불만과 욕이 쌓이게 됩니다.


다른 민간 회사도 비슷하겠지만, 공무원의 경우에는 '어느 부서에서 누구와 근무하느냐'가 개인의 보직경로에서 가장 큰 고려사항입니다. 평생의 2~3번 승진하기 전을 제외하고는 굳이 힘든 부서에 있을 필요가 없고, 어떤 부서를 가서 자기 계발을 하거나 성과를 내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유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에도 어떤 부서에서는 100을 일했다면, 어떤 부서에서는 10 정도만 일하고 돈은 동일하게 받았고, 승진에도 큰 영향이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사 시즌이 되면 어떻게든 편하고 좋은 부서를 가고자 개인사정을 들먹이게 되더군요. 이렇게 인사담당자들은 개인상황과 인간관계의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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