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땐, 하는 일이 무엇이 되었든,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다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월급이 얼마든 그저 재미있게 일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어떤 사무관님께서 진지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공무원은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안에 있는 하나의 톱니바퀴라고 생각해요. ㅇㅇ씨도 거시적으로 보면서 내가 어떤 일에 일조를 하고 있는지 보면서 일을 하면 좋을 거예요.'
확실히 그랬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결과적으로 어떤 일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그것이 사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할 때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무원 초반에, 내가 담당하고 있는 사업이 긍정적인 뉴스에 나오고, 이를 보고 누군가 연락을 줄 때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또, 국가적으로 중대한 이벤트 때문에, 갑자기 주말에 놀고 있는 와중에 호출을 당했을 때에도, 친구들에게 왠지 으쓱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해왔고, 지금 하고 있고, 앞으로 해야 될 일의 90% 이상이 국가나 사회가 아닌, 그저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무의미한 일들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 이후, 업무에 대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고, 그저 퇴근 후의 삶에만 집중하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에 해당하는 최소 하루 8~10시간이 인생에서 무의미한 시간이라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애처로워졌습니다. 앞으로 30년간 이런 생각을 가지고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습니다.
낮아지는 공직에 대한 선호도에 대응해, 경제적 보상이 어렵다면 적어도 일에 대한 감정적 보상 즉, 일에 대한 자기 효능감을 높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적어도 스스로 자조하거나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공무원 생활 동안에 파편으로 흩어져 있던 기억을 머릿속 어딘가에 주섬주섬 저장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쓰고 싶었고, 누군가에게는 들려주고 싶었던 그런 사건과 생각들을 통해, 공무원 생활에서의 의미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주제넘을 수도 있고 부족한 생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거울, 누군가에게는 열쇠, 누군가에게는 그저 의미 없는 한 조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읽혔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또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건강한 공직사회가 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애처로운 공노비 생활' 시리즈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