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엄마’의 ‘방학’ 일지
따스하고 다정 문구 뒤로
엄마들 입에서 여기저기 한숨 소리가 튀어나온다.
나 또한 그 여기저기 있는 엄마들 중 하나다.
프리랜서는 내 시간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선호하고,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 제일 좋은 직업으로 꼽는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집에 있다면?
그냥 가정주부다.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을 생활화하면서 같은 퀄리티를 계속 유지해야 하고 ,
자신은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신을 홍보해야 한다.
나에게 3개월을 쉰다는 것은 어쩌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려온 감각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기간이기도 하다.
개인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직업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2개월 반짜리 폐업통지가 왔다.
평소 어떤 주제로 그림을 그릴지, 어떤 색을 쓸지, 어떤 스토리를 그릴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오랜만에 매 끼니에 뭘 먹일지, 내일은 뭘 하며 보낼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해 주느라 정신이 없다.
낮을 ‘내’가 아닌 ‘아이’를 위한 스케줄로 꽉 채워서 지낸 후
저녁을 먹이고 책상에 앉아 드디어 나의 시간을 가져 본다.
낮 동안 어렴풋이 떠올랐던 그림 주제는 막상 그리려니 뿌연 미세먼지처럼 보일 듯하다가 사라졌다.
펜은 잡았는데 뭘 그릴지 떠오르지 않으니 선만 계속 그어댈 뿐이다.
이미 기운 빠진 정신력이 쉬고 싶다며 침대로 손짓한다.
괜스레 억울하고 화도 나서 내일은 꼭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갖겠다 다짐해 본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엄마‘라는 단어가 귀에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종알대는 아이에게
“엄마 일 하고 있으니 나중에 얘기해”라며 냉정하게 말했지만
얼마 안 가 아이가 시무룩하게 혼자 놀고 있는 모습에 미안해졌다.
대안으로 태블릿이나 티브이를 보게 해 놓고는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 제지시켰고,
배달 음식이나 사 온 반찬을 먹이고 있는 와중에 건강이 신경 쓰였다.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못하는 게 참으로 한심했다.
아이가 이번 방학은 어린이집을 쉬고 싶다고 해서
초등학생 되기 전에 추억이나 많이 만들자며 자신 있게
“그래!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라고 해놓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나의 대책안은 지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이 아니라 ’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일로서 자리 잡고 싶은 마음도 크고,
아이도 내 손으로 잘 키우고 싶었던지라
몸이 쉬면 머리가 움직이고, 머리가 쉬면 몸이 움직였었다.
신기하게도 취미라고 생각하니까 조급함이 사라졌다.
sns 접속 횟수가 줄었고, 그러다 보니 내 상황과 그림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기초가 탄탄해야 그림이 좋다’라는 말이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남아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아이가 학원 가는 시간에 맞춰 미술학원도 등록했다.
2024년에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연습해 봐야겠다는 신년계획을 세웠는데,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는 게 진정 즐기는 방법인 것 같다.
오늘도 아이가 깊게 잠든 시간에
취미를 즐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