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위상증후군-내 몸은 유럽에 있다.
불면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책과 영상들을 보면 10시간 이상 취침한 집단보다 7-8시간 동안 적정한 시간을 취침한 집단이 각종 유병율이나 사망률이 더 낮고 3-4시간의 숏트 타임 슬리퍼 집단은 이들 중 가장 사망률이 높았다. 물론 이러한 콘텐츠들의 최종 결론처럼 수면시간 보다 수면의 질에 더 관심을 가지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맞지만 나는 일단 길게 푹 자고 싶다. 7.5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듯 내 몸엔 10시간 이상 자는 잠이 더 맞는 건 아닐까? 게다가 최근의 연구결과들로는 7-8시간이 적정수면시간도 남성의 신체 기준이지 여성의 경우는 8-9시간은 자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다. 세상에는 쇼트 타임 슬리퍼지만 전혀 다음 날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선천적으로 잠들기가 어려운 데다 잠을 10시간 이상 자야만 건강한 생활이 되는 체질은 아닐까 싶다. 아니 확신한다. 나는 10시간 이상의 수면이 피로감을 훨씬 줄여 준다.
덧붙여 이러한 책들을 보면(이상하게 불면에 관한 책에는 스탠퍼드식, 하버드 강의, 등등 명문대의 연구 결과로 나온 것이라는 홍보 문구가 많다)
노화로 인한 불면은 너무 당연하므로 젊은 시절의 자신과 비교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노화자체가 불면 혹은 자다 깨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여러 증상들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노화는 일단 멜라토닌의 분비 자체도 현저히 줄어들게 만든다. 또한 눈이 빛을 받아들여 세로토닌의 분비와 각성, 멜라토닌이 잘 나오도록 돕는데 관여하는 것인데 중장년은 백내장, 시력저하 같은 눈의 노화로 인해 빛의 자극도 덜 받고 체온 조절 등등 각종 신체 능력 또한 떨어지기 때문에 불면은 너무나 당연한 순리라는 것이다. 게다가 노화는 방광의 용량마저 작아지게 만들어 자다가 중간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깨는 일도 더 빈번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저 늙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손해를 입고 사는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많은 악영향만 가져오는 것인가. 저 말들은 큰 깨달음을 주기도 했지만 나는 아직 백내장도 없고(확실한가?) 방광도 멀쩡하며(이 또한 확실한가?) 내 나이가 체온조절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질 만한 나이인가? 이런 의문도 들었다. 40대이니 물론 중년이다. 노화가 시작되고 있는 나이인 것은 인정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며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고 중력의 방향대로 쳐지고 근육은 감소하고 소화력도 저하되어 이전보다 많은 음식을 섭취하기도 어려워진다. 이처럼 노화로 인한 각종 외모 변화 및 장기와 신체의 노화를 받아들이듯 수면패턴의 변화도 노화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왜 유독 잠만은 젊은 시절처럼 푹 자길 원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저서도 있었다(왜 못 잘까/니시노세이지/북드림) 니시노세이지는 수면생활을 또래와 비교해야 하지 예전의 자신과 비교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늘 수면장애를 겪어오던 나로서는 이 지점에서는 살짝 억울하다.
사실 나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잠을 못 잤으니 20대부터 적극적으로 치료를 했어야 했지만 혈기왕성한 그 시절에는 잠 안 자고도 밤에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노래 제목처럼 나의 불면을 아름답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절도 분명 다음 날 낮은 몽롱하고 매우 힘들었을 텐데…
이전 병원에서 원장님은 내 신체리듬을 유럽인이라 표현하고는 했다
나는 못 자는 것이 아니라 신체리듬 자체가 여기가 아닌 반대편 나라에 있다고.
그래서 늦게 자고 늦게까지 못 일어나는 것이라고. 불면을 호소하고 약효를 의심하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수면위상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불면증과 다르게 수면시간이 뒤로 밀리는 현상으로 매번 새벽이 되어야 잠들고 출근을 위해 억지로 겨우 힘을 내 일찍 일어나니 낮 동안 내내 졸리지만 밤이 되면 다시 정신이 말똥말똥 해진다고 한다. 정말 선천적으로 그런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고 그것이 나인가? 20대 대학생이던 시절과 백수 시절에 나는 새벽 4시에 시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그 시간까지 자지 않고 그 프로그램을 듣는 것은 나에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5시가 되면 마치 남들이 10시에 불을 끄고 잠들 듯 자연스럽게 잠을 잤고 다음날은 늘 정오가 되어야 매우 가뿐한 몸으로 일어났다. 나는 정말로 대한민국 반대편 나라의 신체리듬을 가지고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직장인이 되고서야 나의 괴로움은 시작되었다. 여전히 내 신체는 유럽인인 듯 늦은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는데 어김없이 7시면 눈을 뜨고 출근을 해야 하지 않는가. 평균 수면 시간을 자던 사람이 강제로 숏트타임 슬리퍼가 되었으니 몸이 힘든 건 당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내 신체 리듬에 맞는 프리랜서나 오후 근무가 가능한 일을 업으로 삼았어야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