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년 만에 신경정신과를 다시 찾다.
5월 2일
거의 한 달째 이어지는 불면을 견디지 못하고 직장이 있는 지역에서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못 잔 것은 아니고 이틀을 뜬눈으로 새우면 다음날은 너무 피곤해서 자동으로 숙면이었다. 물론 다음날 몸이 가뿐하고 개운해지는 진짜 숙면은 딱 한 번이었고, 어쨌든 삼 일재는 수면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틀 불면 후 하루 수면 이틀 불면 후 하루 수면 상태가 거의 한 달을 이어지니 불면에 따른 여러 증상들로 생활의 질이 매우 하락했다.
일단 입안이 매우 까칠하고 혀에 혓바늘이 돋아서 음식 섭취가 불쾌했다
둘째로는 피로로 인해 소화가 원활하지 못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됐다.
셋째 뒷머리 아래쪽이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원래도 건강염려증이 있는 데다가 부계 쪽 유전도 있는 나로서는 각종 증상을 뇌질환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어 스스로를 괴롭혔다
넷째 불면 다음날은 머리카락이 어찌나 빳빳하고 푸석 해지는지 과장해서 손가락으로 빗어야 할 정도였고 피부상태는 얼굴의 모든 모공이 활짝 만개한 꽃 마냥 벌어지고 피부 탄력이 한순간 5년을 앞서간 듯 떨어졌다.
다섯째 잠을 자지 못하니 신경은 날카롭고 가끔 저 멀리 어딘가에서 바늘로 누가 나를 찌르는 듯한 찌릿함이 느껴졌다.
여섯째 피곤하고 몽롱한 상태이다 보니 행동도 굼떠지는지 업무에서 효율성이 떨어졌다.
일곱째 면역력이 떨어져서 입술에 단순포진을 달고 살게 된다.
여덟째 이 모든 것들이 원인이 되어 가뜩이나 예민한 성정을 지닌 나는 세젤예(세상 제일 예민) 녀가 되어 작은 일에도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 모든 걸 차지하고서도 잠을 못 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수면시간 동안 우리 신체와 뇌는 휴식을 취하고 뇌의 노폐물도 배출하고 면역력도 회복시켜 주는데 잠을 못 자면 노폐물을 껴안은 채 휴식 없는 노동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렇게 하여 다시 신경정신과를 방문하기로 결심하고 몇 군대 검색을 해봤다.
후기 및 사진상 왠지 신뢰가 가는 병원은 직장에서 너무나 가까웠다. 혹여나 누군가의 눈에 띌까 포기했다.
다음으로 찾은 병원은 늘 다니던 피부과 내과와 한 건물에 있는 병원이었다. 그렇게 내과를 다니면서도 거길 못 봤다는 것이 신기했다. 건물이 비교적 새 건물이고 직장에서 가장 멀기 때문에 이곳을 선택해 방문하기로 했다.
도대체 신경정신과는 왜 예약을 받지 않는 걸까? 신경정신과 특성상 예약 후 망설이다 방문하지 않는 사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혹은 한 사람이 말을 오랫동안 하는 일이 발생하면 다른 환자들의 대기시간이 너무 늘어나기 때문일까? 이 전에 거주하던 도시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그렇고 예약을 받지 않고 무조건 기다리는 시스템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신경정신과는 막상 가보면 내과로 착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멜라토닌 호르몬이 떨어지는 중 장년 노인분들의 방문이 많다 보니 부지런하고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그들에 비해 직장인인 나 같은 환자들은 무작정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사람을 매우 지치게 만든다. 그렇게 신경정신과 선생님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전 병원은 의사 선생님이 조용한 음악을 틀고 본인은 서 계시고 환자인 나는 가운데 앉아 마치 선생님을 우러러보게 되는 자세로 내 이야기를 하는 구조였다. 게다가 선생님 뒤로 걸려있는 신경안정을 위한 듯 보이는 그림들이 내가 마치 큰 병을 앓는 사람이라 끝까지 몰리다 종교단체라도 와 있는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썩 좋지 않았었다. (물론 정신적 질병은 감기처럼 인식되어야 하고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번 병원은 일단 오늘은 대기가 짧아서 좋고 매우 깨끗한 건물이라 좋았다.
경력자인 만큼 나는 처음 보는 선생님에게 구구절절한 사연팔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간결하게 나의 상태를 보고했다.
태초에 엄마부터가 불면을 갖고 있는 유전적 요소부터 잠에 일찍 들지 못해 일찌감치 부모를 고생시켰던 아기시절과 늘 잠에 늦게 들어 지각을 도맡던 학생시절, 이전 도시 병원에서 복용한 약 효과가 2-3시간 후에나 나타나 괴로웠던 점, 직구를 한 멜라토닌 젤리로 간신히 이어오던 수면생활과 젤리를 과다복용해도 삼일에 한 번 꼴로 잠을 자게 된 최근 한 달의 근황, 휴일이었던 어제도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나서 햇빛을 보기 위해 대낮에 돌아다니고 멜라토닌 젤리를 4알을 먹었지만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지금 여기 앉아있는 오늘 일 까지를 속사포처럼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나의 직업과 거주형태 및 동거인 등에 관해 묻고, 불면 외에 우울이나 불안 같은 증세는 없는지 물었다.
보통 불면을 고백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이 있거나 우울, 불안이 있는 것으로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천봉쇄를 위해 확고하게 잠이 안 와서 화나는 거 말곤 전혀 다른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끝으로 선생님은 멜라토닌 젤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졸피뎀을 권하셨다.
멜라토닌이 수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내가 먹어온 수면젤리는 일시적인 시차적응 혹은 교대근무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나 같은 원인불명 중증 불면자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젤리는 정량 외에 과다복용해도 입면이 더 빨리 되거나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5년 전에도 이번 방문 이전에도 졸피뎀에 대해 나름 서치를 했고, 졸피뎀이 하필 분류가 항정신성 마약류에 되어있고 일부 유명인들 사례로 인해 인식이 안 좋아져 그렇지 수면장애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임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졸피뎀을 권하자 나 역시 망설여졌다.
일단 비교적 젊은 현재부터 졸피뎀을 복용할 경우 훗날 얼마나 의지하고 중독이 될지 나 자신조차 장담할 수가 없었다. 중독을 걱정하는 내게 선생님은 환자분은 이미 불면중독이라고 하셨다.
불면중독.. 불면에 중독이라는 글자가 따라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매우 당황스러웠다.
마지막까지 졸피뎀 선택을 망설이게 한 것은 내 직업상 어쨌든 마약류로 분류된 약을 처방받는다는 것이 매우 꺼림칙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길게 남아있는 직장인의 삶에서 혹시라도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걱정에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려고 해 목을 가다듬을 정도였다. 이러한 내 고민에 선생님은 일단 졸피뎀보다는 약하다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이 약은 감기약을 먹고 졸린 증상이 일종의 부작용인데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 졸음이 오는 부분만 강화한 약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다시 불면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