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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Nov 30. 2023

Day 5

나는 다전입니다 (5)

다전은 장남과 장녀가 만나 결혼해 낳은 첫 아이였다. 애 엄마처럼 안 되려면 아무래도.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잘 자고,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책도 읽고, 응. 아무래도 좀 잘 관리해야지. 다전이 생겼다고 자신들의 부모에게, 그러니까 다전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가장 먼저 들은 소리였다. 미지한테 그만들 좀 해요! 와이프가 그래서 뭘 못해요? 돈을 못 벌어요? 집안일을 못 해요? 그딴 게 대체 우리 첫애랑 무슨 상관이랍니까! 참다못해 다전의 아빠가 소리쳤다. 아니, 우리는 애가 나중에 커서 상처받을까 걱정되어서……. 그 말을 들은 다전의 아빠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고서 곧장 집을 나섰다. 우리 미지가, 시댁 가서 말 몇 마디 들은 게 자꾸 떠올라서……. 다전의 엄마 역시 아빠와 함께 등을 돌려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전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둘은 그들의 부모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1992년, 한여름의 어느 낮에 아이는 태어났다. 에어컨 온도를 아무리 낮추고 바람 세기를 최고치로 설정해도 무더운 날이었다. 다전의 엄마는 더위에 지쳐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못하겠다는 말 한마디를 뱉지 않았다. 그저 이를 앙다물다가 다시 힘을 주다가 자신의 곁을 지키는 남편의 손과 팔을 쥐어뜯다가 할 뿐이었다. 엄마의 고군분투 끝에 다전은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다저엉, 다, 전이… 우리, 아이 이름…이요……. 비로소 아이를 품에 안은 미지의 첫 마디였다. 다전의 아빠는 다전이? 그래! 그래! 하면서 아이와 그의 아내를 연신 쓰다듬었다.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엄마는 다전에게 말했다. 네 아빠한테 맞게 들었냐고 한번 물어보기나 할 걸. 평소 같으면 서로 그랬을 텐데. 나는 힘들고, 아빠는 정신없어서. 그게 다전이 다정이 아닌 이름을 갖게 된 이유였다. 이 긴 이야기를 다전은 자신을 놀려대는 친구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납득하기보다 흘려들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엄마가 이야기하며 지었던 표정을 제대로 전할 자신이 없었다. 다전을 품에 안아 들었을 때 느낀 감정, 아빠와 상의하지 않고도 절로 떠올랐다는 이름, 이후 받아 든 출생신고서에는 엉뚱한 이름이 적혀 있어 서로 한참을 웃어댔다는 그들의 추억을. 이미 놀리기로 작정한 친구들에게 말했다가는 부모님의 기억이 바래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나다전’으로 살기로 했다.


(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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