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서가 초단편소설 워크숍 마지막
“다음 달에 너 괜찮으면 우리집 좀 봐줄래?”
언니와 오랜만에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얘기하던 그녀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입을 뜨악 벌리고 말았다. 형부와 데이트한 일, 둘째 조카가 문에 손가락이 껴 울며불며 병원에 간 일 등을 얘기하던 중에 나올 화젯거리는 아니지 않나.
“엥? 얼마나? 갑자기?”
아니, 나는 어쩌면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대화 도중에도 언니는 몇 번이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몇 분 간 말없이 티 머들러로 커피를 휘적거렸다. 무언가 내게 할 말이 있음을 짐작하긴 했으나, 이런 종류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 달 정도…? 애들 방학이라 틈타서 여행 좀 가려는데, 통으로 집을 비우려니 조금 불안해서. 부탁할 덴 역시 동생뿐이더라.”
멋쩍게 웃는 언니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친동생이어서 믿고 맡긴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백수인 내가 그곳에서 가장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여겼겠지. 언니의 집은 경기도에서도 끝 쪽에 있고, 인근 역에서 차를 타고 20분은 더 들어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집을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무직이라면 3일도 머무르기 힘들 터였다. 하지만 나는 상황이 달랐다. 글을 쓰겠다며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는 아침저녁으로 카페를 전전하고 있었다. 음료 한 잔을 주문하고서는 두어 시간을 웹서핑만 하기 일쑤였지만. 글감도 찾을 겸 환기할 겸 어디론가 떠나야 하나 싶은 참이었다.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대답을 들은 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잘됐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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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언니의 집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이사한 뒤 거리가 멀어져 한두 번 방문한 기억이 전부였지만, 나는 기대감에 잔뜩 차서 택시에서 내렸다. 언니의 집은 누구나 한번쯤 꿈꿨을 모습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3.5층의 전원주택에 너른 마당이 있고 뒤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는 곳. 아침이면 직접 드립커피를 내려 마시고, 저녁에는 차를 마시면서 마당이 보이는 창가 앞에 앉아 글을 써야지, 주말에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바베큐 파티를 해야지.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을 떠나 한적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글 쓸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부엌 식탁에 집 관리하는 법 모아둔 노트 있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꼭 해. 꼭!’
들뜬 마음으로 집 문을 열었을 때,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웬 노트? 의아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준비 한다고 집 어지럽히고 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단 괜찮은데?”
아이 둘에 방도 많고 다락방까지 있어 여행 전까지 다 못 치우고 갈 것 같다고 우는 소리를 했던 언니였다. 내심 불안했지만, 조카와 언니, 형부의 각종 신발이 있어 어수선한 신발장을 제외하고는 집은 꽤 깨끗했다. 조카의 방은 꺼내진 장난감과 물건이 없이 모든 게 장롱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침대 커버도 걷어 옷장 안에 개켜 있었다. 침실 한 켠에는 한 달 동안 머무를 나를 배려해준 듯이 깨끗한 이불과 베개 여러 개를 모아두었다.
그래도 언니가 세심한 구석은 있다고 생각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는 야채는 물론, 고기부터 우유, 두유 등까지. 각종 식료품으로 꽉 차 있었다. 흡족한 기분으로 냉장고 문을 닫았을 때, 그제야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집을 관리해달라는 그런 내용이었지. 두툼한 양장 노트 세 권. 두툼한, 세 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야?”
정원 잡초 관리, 블루베리 나무와 토마토, 배추, 마당 잔디에 물 주기, 벌레 잡기, 쓰레기 분리수거, 바베큐장 관리, 세탁기 청소, 각 방 청소와 이불 빨래, 테라스 물청소… 대략 훑었을 뿐인데 수많은 내용이 펼쳐졌다. 이걸 일주일에 두 번? 당장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건조하고 높낮이 없는 여성의 목소리뿐이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
노동의 서막이 열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