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쓰기

낯선 밤거리와 빛나는 암장

선유서가 초단편소설 워크숍 2주차

by 시느

충동적으로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배낭 하나만을 메고 이곳에 도착했다. 혼자서 여행하는 건 얼마 만이더라. 나는 숙소 입구를 찾아 어수선한 밤거리를 헤매는 중이었다. 금요일 밤을 즐기는 문화는 한국만 있는 게 아니었는지 이곳, 도쿄의 모든 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조용한 곳으로 여행지를 선택했겠지만, 어제저녁은 어쩐 일인지 사람들로 둘러싸인 관광지를 골랐다. 여행을 떠나기 전 1~2주 전부터 짐을 챙기고 비상약을 사고 다이소를 들러 생필품을 구비하는 식의 난리를 치는 나였지만, 이번엔 배낭에 세면도구와 스킨로션, 갈아입을 옷을 대충 쑤셔 넣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게 다 그 사람 때문이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일부러 사람이 가득한 곳에 있는 일, 그렇다. 나는 누군가를 잊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낯선 장소 한가운데에 나를 던져두면 네 생각 따위는 안 하지 않을까. 그런 바람을 안고서 비행기에, 전철에 몸을 실었지만, 바다를 건너와서도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왜? 어째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핸드폰 지도 앱을 켜고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길을 찾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잊혀지리라, 마침내 내가 갈 곳이 나타나리라.


“아!”


사람이 많은 탓에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결국 이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내 어깨에 누군가 부딪히며 작게 비명을 내질렀다. 세게 부딪힌 탓에 상대의 어깨에 멘 에코백이 흘러내렸고, 바닥에 철푸덕 떨어지며 짐이 쏟아졌다. 나는 스미마셍, 쏘리, 암소쏘리, 미안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시큰거렸다. 나도 잘못했지만, 이건 너무 아프지 않은가, 타국에서까지 아파야 한다니.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내가 떨어뜨린 에코백과 짐을 주워주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상대도 허둥지둥하며 쏟아진 소지품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니, 스미마셍.”


무심코 한국말을 내뱉었다가 서툴게 일본말을 했다.


“괜찮습니다.”


상대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한국말로.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아, 한국 분이셨군요, 정말 죄송해요, 같은 말을 하며 나머지 물건을 주웠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건넨 것은 평소 보던 것과는 다른 신발이었다. 밑창 전체가 고무로 이뤄져 있고, 발등은 스웨이드 천으로 덧댄 듯한 형태에 벨크로 끈을 가진 신발. 게다가 밑창이 둥글게 휘어 있었고, 크기 또한 한눈에 봐도 그의 발에 맞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작았다. 누구의 것일까?


“저… 혹시 이건 어떤 신발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평소라면 곧바로 내 길을 갔을 텐데, 낯선 여행지에 있다는 이유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게 대답했다.


“그, 암벽화, 라고. 클라이밍 할 때 신는 신발이에요.”


클라이밍. 들어본 적은 있는 운동이었다. 정해진 돌만을 잡고 올라가는 운동. 친구가 요즘 유행하는 스포츠라며 같이 원데이클래스를 들어보자고 몇 번 권유해 검색한 적이 있다. 높이 솟은 벽을 보고 기겁하며 거절했지만.


“저! 저, 저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구경해도 될까요?”


아무래도 올해 치의 용기를 오늘 다 쓰는 것만 같다. 불쑥 말을 꺼내 놓고는 후회가 되어 다시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못 들은 걸로……. 그렇게 말하는 도중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괜찮은데, 클라이밍 처음이시면 힘들고 재미없을 수도 있어요. 괜찮으세요?”


남자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꽤 친절했다. 어딘가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마음이 변할까 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괜히 배낭끈을 꽉 쥐며 걸음을 서둘렀다. 형형색색의 간판이 떠다니는 골목을 빠져 나오자 작은 강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강의 건너편에는 앞면만 통유리창으로 된 직사각형의 낮은 건물이 있었다. 옆에 있던 남자가 손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저기예요, 라고 말했다. 고개를 좀 더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커다란 벽과 그곳에 붙은 크고 작은 홀드들, 그것을 잡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자와 나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클라이밍 센터와 가까워질수록 그 모습이 더욱 선명히 보였다. 어느 순간 나는 그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리 끝에 다다르니 강물에 비친 암장을 언뜻 볼 수 있었다. 유리창과 센터의 조명으로 밤의 강은 더더욱 빛나 보였다. 빛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란 이런 걸까. 힘을 주어 문을 힘껏 밀었다. 어딘가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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