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뒤편으로 원적산이 보였다. 어제 눈이 내려서 그런지 아침에 보니 산마루가 하얗다. 성탄절이 지났는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트리 장식이 들어선 모습이었다.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당장 산으로 달려가고만 싶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해야 할 일을 마저 끝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두 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며칠 동안 하늘이 흐리고 눈비가 내리더니, 비구름은 모두 물러가고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공기까지 상쾌했다. 온천공원에 도착하니 산책로 군데군데 눈이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엽고 보기 좋았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안흥지에 다다르니, 그간 푹한 기온으로 호수 안의 얼음이 많이 녹아 있었다. 분수가 있는 위치에서 십여 미터가량 지점에 흐르는 물과 얼음의 경계가 생겼다. 가느다란 얼음이 투명하게 보였다. 얼음 위로 눈이 여전히 쌓여 있는 상태였고, 그 눈밭 위로 오후의 햇살이 비추었다. 그리고 부서진 햇살이 내 눈 안으로 들이쳤다. 정말 아름다운 눈부심이었다. 은반 위에 춤추는 햇살 요정(?),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예전에 누가 ‘어느 계절이 제일 좋아?’라고 물어보면, 나는 자신 있게 ‘여름이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요즘은 쉽게 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에 무뎌진 것 같으면서도 더욱 예민해졌다고나 할까. 사계절이 모조리 좋고, 찬란하다. 각각의 계절이 간직한 풍경과 그 안의 생산물, 이를테면 제철 과일 등이 귀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계절을 오롯이 느끼는 경험이 소중하기만 하다. 이런 말 하면 어르신들에게 혼이 날지도 모르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네 계절’ 그리고 나의 계절을 자연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 긍정적인 변화 덕분에 나는 하루하루 행복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더는 한 계절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