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매장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친구들과 놀겠다고 나간 여덟 살 아들이 소재 불명이었던 적이 여러 번. 아이에겐 휴대전화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버텼다. 휴대전화를 사주는 순간 아이는 망가질 것이다. 현란한 액정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요즘 학부모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디지털’이라는 블랙홀 아닌가. 가끔 내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도 넋이 나가는데 자기 것을 갖게 되면 틀림없이…. 아직은 안돼! 불편해도 참았다, 속이 터져도 견뎠다. 아이를 사수하기 위해 모두가 불편해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렇게 아이의 생활에 공을 들였다.
그런 아이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혼자서 학교와 예체능 학원에 다녀야 했기에 그만큼 이동의 범위가 커졌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주변에 놀러 나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육아에 전념하다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나로서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당할 요량이 없었다. 연락할 수단이 필요했다.
별수 없이 찾아간 곳은 휴대전화 대리점이었다. 누리집 검색을 이미 마친 터라 딱 두 곳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보기에 깔끔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반대편의 다른 매장보다는 좋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했다. 제품과 요금제에 대해 요모조모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기계 값을 최대한 깎아드린 거다, 어느 가게보다도 싸다며 구매를 재촉했다. 생색을 내는 직원의 표정은 꽤 신뢰할 만했다.
혹시 몰라 찾아간 다음 매장은 건물이 좀 오래돼 보였다. 그곳 직원은 다소 지친 표정이었다. 말투도 무뚝뚝했다. 근데, 이게 어떻게 된 일. 처음의 가게보다 휴대전화 요금이 5,000원이나 저렴했다. 내가 그 차이의 이유를 묻자, 본 매장은 해당 제품의 기계 값을 한 푼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겉모습과 달리 직원은 문구 세트 등 사은품을 여러 개나 챙겨주었다. 그러고도 부족한지 또 물었다.
“뭐, 더 드릴까요?”
나는 염치가 없는 것 같아 사양했다. 챙겨주려는 사람한테는 이상스레 겸연쩍은 법.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 매장 직원이 꾸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점이 참 고마웠다. 허튼 말이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써 챙김을 받은 느낌이었다. 괜스레 기분이 좋고 몸에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시장 논리와 그 매장의 경영 방침은 차치하고, ‘상대방에게 진실한 것’만이 최선의 판매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