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는 느낌
우리 집 꼬마는 올해 아홉 살이 되었다. 그 녀석은 누나와 달리 행동에 멈춤이 없다. 분주히 돌아다니는 통에 살이 찔 틈이 없다. 빼빼 마른 체격에 작은 키, 덩달아 얼굴이 귀엽다. 그런 모습이 또래나 선배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는 것도 같다.
나는 요즘, 꼬마의 작은 세계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2월 1일, 꼬마는 아침을 먹다가 몸을 가까이 대며 내게 귓속말을 하듯이 말했다.
“아빠, 김○○ 형이 갖고 노는 걸 제가 잠깐 만졌는데, 형이 저한테 먹을 거 가져오래요.”
순간 나는 꼬마가 다니는 돌봄 교실에 완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꼬마는 2학년, 부당한 요구를 하는 아이는 3학년. 꼬마 말로는 그 아이는 가끔 다른 친구들에게 장난감을 집어던지거나 했고, 몇 번 꼬마에게 먹을 것을 요구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꼬마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꼬마는 잠시 고만하는가 싶더니, “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 봐.”
나는 이제 막 어려움을 겪고 있는 꼬마가 자기의 의사를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이들의 세계는 딱 아이들이 작용할 만큼의 힘이 작용하는데, 종종 부모나 어른이 그 균형을 깨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자연스럽게 해소될 문제가 비정상적으로 커져 좀처럼 해결하기 어렵게 된다. 나는 아이들은 자기 시련을 이겨낼 충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꼬마는 자기만큼이나 작은, 허쉬 초콜릿을 달랑 하나 챙기고는 학교에 갔다. 집으로 되돌아온 꼬마가 아무 말 없어 내가 먼저 물었다.
“아들, 아침에 그 일은 어떻게 됐어?”
꼬마는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얼버무리며 “어, 잘 기억이 안 나요.”라고 말했다.
“응? 아빠한테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어? 그 형한테 먹을 거 준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꼬마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제야 더듬더듬 말했다.
“응, 어, 주긴 줬어요.”
“그래서? 형이 뭐라고 했는데?”
“이번 한 번만 봐준대요….”
“…….”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참고 꼬마에게 되물었다.
“어때? 그 형한테 먹을 거 준 게 잘한 거 같아?”
“아니요, 제가 손해 보는 느낌이에요.”
“그래?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건데?”
“그때는 안 줄 거예요!”
꼬마는 먹을 거를 주면 그 형이 좋아할 줄 알았나 보다. 꼬마는 되려 그 형으로부터 "이번 한 번만 봐준다"는 말을 듣고 위험이 일시에 사라졌음에도, 다시 언제 또 생기게 될 ‘예고된 위험’의 말을 듣고 실망한 것 같았다.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한 행동이 아무런 소득 없이 '손해 보는 느낌'으로 끝나 버린 것이다.
나는 아침에, 꼬마에게 ‘먹을 거를 주면 오히려 그 형이 너를 우습게 보고 계속 그렇게 요구할 수도 있어.’라며 조언을 해 주었었다. 꼬마는 자기 생각에 따라 판단했다. 그리고 이제 막 꼬마는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체감하고 있는 듯했다. 꼬마가 작은 세계 속에서 하나의 소중한 경험을 했다. 꼬마는 속이 좀 쓰리겠지만, 그 경험과 생각이 시간을 먹고 자라 나중에 ‘큰 세계’에서 어떻게 빛을 발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