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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샘 Oct 29. 2023

13 논문의 시작

고행의 시작

어찌어찌 논문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논문의 주제도 정하지 못하고 막연히 쓰기 관련 주제가 어떨까 정도였다. 왜냐하면 후에 연구 실적을 논할 때 쓰기가 아무래도 언급하기도 좋고 이로 인한 연구의 연결성도 좋을 것 같아 예전부터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토픽 중 쓰기를 선택할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쓰기를 결정하고 나서도 어떤 쓰기를 주제로 선택할까 하는 고민이 또 생겼다.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더 어렵고 결정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결정은 해야 하고 지도 교수님 컨펌도 받아야 하니 그리고 나의 일이었다. 다른 이가 결정해 줄 수 없는 나의 일!!


드디어 교수님의 컨펌을 받고 시작된 논문의 시작. 서론 작성보다 연구 데이터와 수업의 설계, 그리고 그 결과물을 수거하는 것이 급했다. 수업은 줌수업으로 대체하고 학습자들을 모으고 수업 자료와 쓰기 작문을 모으는 일이 시급했다. 이 많은 걸 다 하고 논문 심사를 받을 수 있을까?


이때의 나는 지금까지 나와 다르게 몇 번의 질문을 통해 한 걸음 디뎠고 또 고민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두렵고 결과에 집착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처음 가는 길이었고 그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도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긴 길을 가고 있었다.


순간순간 외롭고 지쳤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뜨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논문을 썼고 지우고 그러다 시간이 되면 씻고 다시 수업을 하러 나갔다.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면 실험 수업 자료와 실험 수업 시물레이션을 하고 실제 수업을 하고 과제를 이메일이나 카톡 사진으로 받았다.


하다 보면 열 두시가 되기 일쑤였고 그제야 무언가를 꾸역꾸역 먹고 씻은 후 다시 책상...

이렇게 오랜 기간 책상 앞에서 사투를 벌였던 적이 언제인가? 고등학교 시절인가? 그때 인생에는 공부의 총량이 있다더니 안 했던 공부를 이렇게 하는구나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 하는 공부라니


지금도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분들은 아실 거다. 네 시간 다섯 시간 앉아있을 수 있지만 허리와 무릎이 아프고 체력이 되지 않는다는 걸. 마음은 의지로 똘똘이지만 나의 몸은 그거와 별개라는 것을 늘 지치고 무언가에 쫓기는듯한 불안감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요즘 '-다면' 문법을 가르고 있는데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요?"라는 예문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고등학교 시절로 가고 싶어요. 선생님은 그때로 돌아가면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할 거예요."라고 하니 학생들이 "우~~~~" 했다. 하지만 그런 야유에도 나는 진심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고등학교 시절로 가서 다시 인생을 세팅하고 대학원까지 어찌어찌 갔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한국어 교육을 한 십 년 정도 일찍 시작했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쓸데없지만 그만큼 나는 이 길을 늦게 들어선 것이 아쉽다. 나는 가르치는 일이 즐거운 사람이고 보통의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때로는 학습자 입장이 되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왜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나 공부를 잘하는 것과 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은 별개라고 맞다고 생각한다. 나의 보통의 학습 수준은 학습자들의 수준에 맞다. 왜? 어떻게? 쉽게? 이런 부분을 끊임없이 스스로 물어볼 수도 있고 실제 그렇게 수업 준비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나이가 든 대학원생에 느즈막에 학위 논문을 쓰는 처지라 노력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매주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또는 학교에서 자료를 서치하고 지치면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논문을 읽으려고 아이패드를 사서 굿노트를 활용하여 자료를 저장하고 어마어마한 활자양을 소화했다.


그때 나의 남편은 혼자 밥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미안한 마음은 컸지만 나의 일과가 빡빡했기에 몇 년만 미안할게 ,,, 이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뻔뻔하지만 그냥 이걸 빨리 끝내는 게 남편에게도 좋은 일이기에 못 본 척, 모르는 척한 일들이 많았다.


지금 그때의 살림 노하우로 남편은 제법 살림을 한다. 나보다 청소도 빨래도 정말 정리도 완벽하다. 가끔 내가 좀 민망할 정도로. 요즘도 집안일을 자발적으로 많이 한다.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한다. 게다가 덧붙여 잔소리까지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그 시절은 각자가 다른 분야의 능력을 키우던 시절이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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