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샘 Jun 19. 2024

삶이 무거운 아이(2)

5교시 음악 시간, 윤태에게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노래 부르는 수업이었다.

“악”

“아~~~~ 악!”

윤태는 처음에는 짧게 하다 나중에는 비상벨처럼 길게 소리를 질렀다. 반 아이들은 귀를 막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윤태야, 무슨 일이니?”

여전히 소리를 지르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며 다시 물었다.

“우리 반 규칙이 있는데. 수업 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반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기요”라고 합창했다. 선생님은 윤태에게 말했다.

“윤태야, 수업에 집중하고 조용히 해줄래?”

윤태는 순간 주춤했다. “조용히 해, 떠들지 마!” 했으면 더 크게 소리 지르며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는데 “해줄래?”라고 하니까 움찔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도 없어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싫어요!”

선생님은 윤태와 반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다.

“윤태가 우리 반 규칙도 지키지 않고, 조용히 해 달라고 하는데도 말을 듣지 않으니 걱정이구나.”

선생님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상담 선생님을 교실로 오시게 했다. 아이들 노랫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던 윤태는 상담선생님과 상담실로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일 학년 때는 일 층 복도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는데, 이 학년이 되고는 그걸 못해서 답답했다.      


다음날, 윤태는 학교 오기 전 문방구에 들러 기다란 플라스틱 칼을 사 왔다. 칼이나 슬라임이나 레이저 총은 가져오면 안 되는데 모른척하고 교실까지 가지고 왔다.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가 친한 친구면 “너 한번 해봐.”라고 하고, 안 친한 아이에게는 “안 돼. 너는 만지지 마!”라고 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에게 딱 걸렸다. 윤태는 슬금슬금 눈치를 봤다.

“윤태야, 무슨 일이니? 그런 장난감을 학교에 가져오면 어떻게 하지?”

처음에는 “몰라요.” 하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학교에 그런 거 가져오는 거 아니라고 하자, 이번에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왜 선생님 명령을 들어야 해요?”

선생님이 ‘우리 반 규칙’이라고 하자, 윤태는 “지키기 싫어요.”하고 딱 잘라 말했다.

    

선생님은 아주 중요한 공부를 하듯 윤태와 아이들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반 친구들은 우리 반 규칙을 다 지켜야 해요. 규칙을 안 지키면 우리 반 친구에게 피해를 주거든.”

윤태는 입을 불쑥 내밀고 소리쳤다.

“흥, 이런 게 없으면 재미없고, 심심하다고요. 놀거리도 없잖아요.”

선생님은 선생님 책상 서랍을 열면서 말했다.

“여기 서랍에 장난감을 넣으면 선생님이 놀거리를 줘야겠구나.”

그 말에 윤태는 자기 손으로 플라스틱 칼을 선생님 서랍에 넣으면서 물었다.

“뭔데요? 뭘 줄 건데요?”  

선생님은 평소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윤태에게 색종이와 a4 이면지 종이를 잔뜩 꺼내 주었다. 윤태는 그걸로 종이 칼과 창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었고, 모르는 친구들에게는 접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윤태는 선생님이 정말 자기를 사랑하는지, 우리 반 아이들 중 누가 내 친구인지 궁금했다.  친구들이 자기를 싫어할까 봐 먼저 친구에게 안 놀겠다고 하고, 화를 내거나 싸움을 걸기도 했다. 윤태가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외톨이가 되는 거와 친구들이 자기를 무시하는 거다. 그래서 뾰족한 창이나 칼을 만들고, 게임에서 지면 이길 때까지 또 하자고 졸랐다.     

윤태에게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엄마도 어떤 때는 나를 사랑하는 거 같다가 아닌 거 같기도 해서 불안하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정말 내 편인지 따지고 확인하고 하느라 늘 머리가 복잡했다.


승철이가 선생님에게 찾아왔다.

“선생님, 윤태는 정말 이상해요. 어제는 나랑 친구라고 했는데, 오늘은 친구 아니래요.”

윤태는 그렇게 놀다 안 놀면서 일부러 친구들을 자기 맘대로 조정하려고 했다.

선생님은 승철이에게 “그럴 때는 그냥 다른 친구랑 놀아. 윤태가 와서 같이 놀자고 할 때까지 기다려 줘.”하고 말해 주었다. 윤태는 친구들이 같이 놀거나, 안 놀거나 변함없이 자기의 친구라는 걸 배워야 했다.      


“윤태야, 무슨 일이니?”

이학년이 되어 윤태가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윤태는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안돼, 하지 마! 혼난다!”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나서, 더 때리거나 싸웠다. 그런 윤태에게 ‘무슨 일’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은 아주 낯설었다.  

“어머나, 윤태야, 무슨 일이 있니?”

“무슨 일 때문에 화가 났을까?”

“친구에게 왜 그랬지? 무슨 일이 있어서?”     

윤태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몰랐다.

“싫어요. 안 해요, 몰라요.”하고 소리 지르고 화만 냈다.


그러다가 자꾸 선생님이 물어 주자, 짧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나랑 안 놀아요.”

“내가 한 걸 무시했어요.”

“나한테 저리 가래요.”

선생님은 윤태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랬구나!”라고만 했다. 야단치지 않고, 누구의 편도 들지도 않았다. 윤태는 대부분 자기 얘기만 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윤태가 먼저 편을 가르고, 안 놀아 준 걸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늘 분명하게 말했다.

“윤태야, 선생님은 늘 네 편이야.”

“하지만 친구 때리는 거나 다치게 하는 건 안 돼. 그런 폭력이 일어나면 선생님이 네 편만 들어줄 수가 없어.”  그러자 윤태가 조금씩 달라졌다. 속상하거나 화가 날 때 나면 친구를 때리지 않고 선생님에게 와서 얘기했다. 선생님은 윤태 편을 들면서도 아이들과 잘 지내는 걸 도와줘서 윤태를 싫어하던 친구들이 줄었다.


윤태를 위해서 전 학교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전교 선생님들의 협조(상담, 보건, 옆반 선생님, 힘센 선생님)가 큰 힘이 되었다. 그중에도 최고는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윤태를 위해서 따로 말하기 공부를 했다.

친구랑 놀고 있는데 윤태가 같이 놀자고 가운데 끼어서 방해하면

“하지 마, 너랑 안 놀아, 싫어.” 이런 말 대신

“지금은 얘랑 노니까 다음에 같이 놀게.”

하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윤태가 “다음에 언제?”라고 물으면, “다음 쉬는 시간에 너랑 같이 놀자.” 말했다. 그리고 다음 쉬는 시간에는 꼭 윤태랑 놀면서 약속을 지켰다. 그랬더니 윤태가 “알았어.” 순순히 비켜나 다음 시간까지 기다렸다.

      


요즘도 윤태는 삐지거나 화가 나면 울면서 책가방을 들고 집에 간다고 한다. 달라진 점은 우리 반 규칙은 지킨다는 거다. 선생님이  “집에 가려면 부모님과 선생님 허락을 받고 가야 해.” 하면 윤태는 기다린다. 엄마와 통화가 안 되면 전화가 될 때까지 계속 책가방을 메고 기다린다.(이럴 때 어머니는 거의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윤태는 교실 뒤편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은 그런 윤태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저 녀석이 왜 그럴까. 언제쯤 마음이 편안해질까.’

결국 윤태는 수업 시간 내내 책가방을 멘 채 뒤쪽에 서 있었다. 집에 가지도 않고, 수업에 참여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 교실 뒷정리를 하다가 선생님은 혼자서 막 웃었다. 윤태가 서 있던 교실 뒤편에 작품들이 모조리 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만들기 작품들이 모두 다 교실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액자는 다 바닥으로 뒤집혔다. 뒤에 서 있던 윤태가 그렇게 해 논 거였다.

'윤태 마음이 혼자 이렇게 불편했구나, 뒤집히거나 바닥을 바라볼 정도로 속상했구나.'

      

다음 날, 선생님은 일찍 온 윤태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누가 작품을 이렇게 해 놓았지? 윤태가 정리 좀 해줄래?”

윤태는 “네” 신나게 대답을 하고는 빠르게 작품들을 앞쪽으로 바꿔 놓고, 뒤집힌 액자로 바로 세웠다.

그러더니 슬쩍 다가와 물어본다.  

“선생님, 휴지가 떨어져 있는데 제가 좀 주울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