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청소? 돈 청소!

by 맑은샘

내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다닐 때 청소시간은 아주 길었다. 수업이 끝나고 거의 한 시간 정도 남아서 교실 청소를 했다. 마룻바닥에 줄 맞춰 앉아서 양초를 문지르고 걸레로 반질반질하게 닦아야 집에 갈 수 있었다. 화장실 청소도 학생들이 했다. 화장실은 지금 같은 깨끗한 좌변기가 아니었다. 변기 밑으로 똥이 보이는 푸세식이었는데 지각하거나 숙제 안 한 애들이 벌 청소로 많이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담당구역이 화장실 청소였다. 그 전에는 한 번도 화장실 청소를 한 적이 없어서 정말 괴로웠다.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걸레를 들고 변기를 닦아야 했다. 그러려면 고개를 숙여야 했는데 변기 밑에서 오래된 똥오줌 냄새가 올라와서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그 밑에 누런 똥이 얼마나 잘 보이는지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전교에서 가장 깔끔하다고 소문난 미술 선생님이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검사를 하는지 화장실을 한 칸 한 칸 열어서 변기가 깨끗해야 ‘합격!’하며 보내줬다. 내가 맡은 화장실은 원래 누런색인지, 내가 청소를 덜한 건지 연거푸 두 번이나 ‘불합격’을 받았다. 아이들은 다 집에 가고 나 혼자 남아 세 번째 청소를 하게 되었다. 그때는 냄새도 덜 나는 것 같고 변기 밑의 똥도 볼 겨를 없이 누런 변기를 박박 닦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합격’ 소리에 나는 감격했다.


'드디어 끝이구나. 이제는 집에 가겠구나 '

좋아하는데 웬걸, 선생님이 말했다.

“걸레 깨끗이 빨아서 검사받아라.”

아, 난 변기 청소보다 오물이 잔뜩 묻은 걸레를 빠는 게 더 속이 울렁거렸다. 걸레는 버려도 될 만큼 낡은 거였는데 검사를 받으라니! 이 걸레는 빨아도 빨아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화장실 청소를 세 번 한 그날, 난 걸레 빨기를 다섯 번 넘게 했다.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빨고 헹구고 빨고 헹구고.


요즘은 학교마다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분이 따로 계신다.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조금만 냄새가 나면 코를 막고 선생님께 달려와서 이른다. 가보면 대부분 큰일, 작은 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전교 학생 자치회의를 할 때 건의사항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의견도 화장실 관련한 것들이다.

- 화장실에 있는 휴지와 물비누를 깨끗이 쓰자

- 방향제를 놓자

- 환풍기를 잘 틀어 놓자

- 비데를 설치하자

- 저절로 물이 내려가는 변기로 바꾸자.


특히 남학생들의 의견은 더 구체적이다.

- 남자 소변기에 과녁판을 만들자(적중을 못해 냄새가 난다)

- 과녁판에 점수 표시를 하자 (적중률을 높이고 성취감을 준다)

- 소변기 앞에다 발자국 표시를 하자(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 남자화장실 청소는 남자분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교 자치회 임원들은 열띤 회의를 했다. 결국 앞의 세 가지 의견은 받아들여서 남자 소변기에 과녁판과 발자국 표시를 했다. 과녁판에 점수 표시를 하자는 의견은 작은 나비, 큰 나비모양을 붙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점수 표시를 하면 모두 높은 점수를 겨냥할 테고 그러면 키 작은 저학년 아이들이 무리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화장실 청소하는 남자분이었다. 우리 학교는 60대 여자분이 남녀 화장실 청소를 모두 했다. 남학생들은 볼일을 볼 때 불쑥 청소하는 여자분이 들어오면 당황스럽다고 했다. 아이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 전국 학교에서 화장실 청소하는 남자분은 없다.

- 지하철 남자화장실도 남자분이 청소하지 않는 곳도 있다.

- 남자분은 돈을 더 많이 줘야 한다.

- 그래도 못 구할 수 있다.

- 깨끗이 청소하지 않고 물만 뿌릴 수도 있다.


아이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더니 대안으로 이렇게 정했다.

- 남자화장실 청소는 쉬는 시간에 하지 않기(그래야 쉬는 시간에 마음 놓고 볼일을 볼 수 있다)

- 여자분이 청소를 하되 가능한 수업시간이나 방과 후에 하기로 했다. (수업시간이나 방과 후에는 화장실 사용을 가끔 하니까.)

-혹시 수업시간이나 방과 후에도 화장실에 갈 수도 있으니까 청소할 때는 반드시 화장실 앞에 ‘청소 중’이라는 노란 삼각대를 세워 놓자고 했다.

그 후로 청소하는 여자분들은 '청소 중'이라는 노란 삼각대를 세워 놓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교실 청소하는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청소당번 대신 모두 같이 자기 자리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반이 많다. 교사도 그 시간에 칠판과 교사 책상 주변을 아이들과 함께 정리한다. 동요를 틀어놓고 신나게 같이 하면 노래가 끝날 때쯤 정리도 마무리된다.


고민스러운 것은 나무 마룻바닥이었다. 그 교실은 옛날 학교처럼 나무 마룻바닥이라 기름걸레를 해야 했다. 기름 걸레질이란 왁스통에서 하얀 왁스를 꺼내 뿌리고 대걸레로 문지르는 거였다. 청소를 잘 안 해 본 아이들은 이게 놀이 활동이었다. 서로 자기가 하겠다는데 대걸레는 딱 2개뿐이라 누가 할지 의논했다.


'칭찬 제일 많이 받은 아이'

학급회의 결과 하루 동안 자기 할 일을 잘하고 벌점이 없는 아이가 하자는 의견이 제일 많았다. 예전에는 벌 청소였다면 지금은 칭찬 청소인 셈이다.


우리 반에서 칭찬이란 이런 거였다. 아침 제시간에 등교하기, 숙제나 준비물 잊지 않고 챙겨 오기, 우유 잘 마시기, 급식 남기지 않고 먹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기(싸우면 벌점 1점, 칭찬받은 거 1점 감점) 드디어 청소시간에 칭찬을 가장 많이 받은 친구가 대걸레를 잡았다. 현호와 소현이었다.

현호는 마치 대장이라도 된 듯 대걸레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고는 왁스를 척척 교실 바닥에 묻히고 기름걸레로 문지르며 다녔다. 다른 애들은 부러운 듯 쳐다보더니 현호에게 다가가서 뭐라고 속삭였다. 나는 열심히 칠판을 지우고 교사 책상 주변을 청소하는데 소현이가 다가와서 일렀다.

“선생님, 현호가 대걸레 한번 밀어보자는 애들한테 백 원씩 내래요.”

"뭐라고?"

아, 이럴 수가!! 벌 청소보다 더 무서운 돈 청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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