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지갑 속 사진

by 맑은샘

체육 시간에 운동장 수업을 하고 오니 내 지갑이 사라졌다. 분명히 캐비닛에 넣고 잠갔는데 가방만 있고 지갑은 없어졌다. 혹시나 싶어 아프다고 교실에 남아있던 현수에게 물었다.

“누가 교실에 왔다 갔니?”

“네, 선생님이랑 잘 아는 아저씨가 왔었어요.”

그 아저씨는 교실에 있던 현수에게 내 이름을 말하며 친한 사이라고 했단다. 아마 교실 문 옆에 붙은 학급 안내판에서 내 이름을 슬쩍 봤나 보다.


3학년인데도 유독 순진하던 현수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인사까지 했다. 그 아저씨는 내 자리에 앉아 소리도 없이 캐비닛 문을 열고 지갑을 꺼냈다. 그 사이 현수는 바른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나가면서 조용히 책을 읽은 현수에게 돈까지 주었단다. 현수는 그 얘기를 하며 땀에 젖은 천 원을 보여줬다. 그 아저씨가 도둑인 걸 알게 된 현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천 원을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내 지갑에는 카드와 현금이 꽤 있었다. 카드는 분실신고를 했지만 돈과 지갑, 신분증은 고스란히 잃어버렸다.


다음날, 학교로 연락이 왔다. 역 근처 노래방에 지갑이 있으니 찾아가라는 거였다. 퇴근하자마자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노래방은 주변의 화려한 상가와는 달리 외진 곳 지하에 있었다. 내려가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도둑질한 아저씨와 연관이 있는 곳은 아니겠지? 나쁜 맘으로 지갑을 찾아가라고 불렀으면 어쩌나? 괜히 혼자 왔나 봐. 누구랑 같이 올걸.’


노래방 문을 여는 데 손이 떨렸다. 노래방 앞쪽에 있던 나이 든 여자가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지갑 찾으러 왔다고 말하자 안쪽에서 누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바라보았더니 키가 크고 건장한 젊은 남자였다. 그 남자는 손에 지갑을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혹시 이 지갑인가요?”

낡고 지저분해진 지갑을 보며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네. 그런데 이게 왜 여기 있을까? 학교에서 누가 가져가서 잃어버린 건데……”

내 말에 남자는 흠칫 놀라며 자기가 가져간 게 아니라고 했다. 노래방 쓰레기통에 있었는데 그냥 버릴까 하다가 그 안에 있던 신분증을 보고 혹시나 하고 연락했단다.


젊은 남자는 지갑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선생님 맞으시죠?”

이곳이 도둑이랑 연관이 있을지도, 혹시 다른 나쁜 의도로 나를 불러낸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던 차라 나는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젊은 남자는 괜한 일을 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모가 그냥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선생님인 것 같아서요.”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찌르르 울림이 왔다.

“네? 어머나. 뭐라고?”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선생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선생님 얼굴이 나온 사진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었어요.”

나는 다가가서 젊은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는 어색해하며 자기 이름을 말했다.

“저, 진호인데 기억 안 나시죠?”

나는 학생들 기억을 곧잘 하는 편이다. 일 학년 때 우리 반이 40명이 넘었지만 뒤쪽에 앉아있던 진호 모습이 떠올랐다. 웃을 때 감길 듯이 가늘어지는 눈이 참 인상적인 아이였다. 말은 별로 없었지만 배시시 잘 웃던 순수한 모습이었다.

“기억 나. 너 1학년 때 잘 웃고 조용했잖아. 무척 귀여웠는데.”

진호는 군대 갔다 와서 이모네 일을 돕는 중이라고 했다. 밤늦게 손님들이 다 가고 나서 노래방 청소하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지갑 속에서 나를 알아보고 연락한 거란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전화해서 찾으러 오라고 말하기까지 조용한 진호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까? 그런 진호에게 지갑이 왜 여기 있냐며 의심하듯 묻다니 아, 나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잃어버린 아쉬움보다 그때 진호를 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 컸다. 돈이 뭐라고? 지갑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나는 도둑질한 사람을 생각하느라 지갑을 찾아 주려는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진호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헤어진 진호는 그 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해 더 안타깝다.


진호야, 네가 그 빈 지갑을 버리지 않고 연락해 준 것 정말 고맙다. 난 일 학년 선생님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데. 너는 지갑 속 작은 사진을 보고 단번에 알아보다니 참 대단하다. 게다가 선생님인 걸 알아보고는 쓰레기통에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는 그 말. 너의 그 마음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고맙고 감동스럽다. 너의 그 따뜻하고 용기 있는 마음처럼 네 앞날이 멋지게 펼쳐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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