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와 스승 사이

by 맑은샘

9월, 신규교사가 우리 학교에 발령 났다.

막 교대를 졸업한 새내기 교사였다. 교무실에 와서 인사를 하는데 긴 머리에 눈이 맑고 예쁜 선생님이었다.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안양 평촌이요.”

“아, 나도 거기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이름을 말하며 인사를 했더니 신규교사는 흠칫하며 쳐다보았다.

“선생님, 저, 1학년 때 제자 이혜수예요.”

“어머? 반갑다. 정말 반가워.”


순간 이혜수의 일 학년 때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눈이 똑같네. 크고 맑은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쳐다보던 눈이 똑같아.

그때는 일 학년 교실 중간쯤에 앉아서 연필을 꼭꼭 눌러서 글씨를 바르게 쓰던 아이였지.

개구쟁이 아이들, 수다스러운 아이들 속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반듯한 아이였다.

이혜수 선생은 어릴 적 동그란 얼굴이 길어지고 키는 165cm로 자라 멋진 선생님이 되었다.


혜수 선생이 물었다.

“선생님, 은영이 기억나세요?”

“그럼, 너랑 제일 친한 친구였잖아.”

혜수 선생은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혜수는 조용하고 말이 없었는데 은영이는 활발하고 말을 참지 못하는 아이였다. 혜수가 글씨를 예쁘게 써서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으면 은영이도 그 도장을 찍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은영이는 어떤 날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도 했지만 보통은 ‘잘했어요’ 도장을 받았다. 그런 날은 은영이는 그 자리에서 입이 부루퉁해서 그 옆에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면 안 되냐고 말했다. 혜수는 그렇게 자기표현을 잘하는 은영이를 부러워했고 은영이는 예쁘게 글씨를 쓰는 혜수를 부러워했다


신규교사 취임식 때는 가족 대표로 이혜수 선생 어머니가 오셨다. 딸은 16년 동안 많이 변했지만 어머니 모습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혜수 선생 어머니도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셨다.

“선생님이 같은 학교에 계신다니 정말 든든하고 좋아요.”

“오히려 제자와 같이 근무할 수 있어서 제가 영광이죠.”

그렇다. 선생으로 내 제자가 잘 자라서 교사가 된 것이 참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이혜수 선생은 나랑 같은 2학년을 맡았다. 동학년 교사는 수업과 학생 생활 지도로 함께 의논하는 시간이 많다. 우리는 동학년 협의 말고도 학부모 상담이나 다툼이 있는 학생이 있을 때 같이 만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했다.


퇴근할 때 가끔 내 차로 같이 오기도 했다. 이혜수 선생은 교대 친구들을 만나서 1학년 담임선생님과 같이 근무한다고 하니까 반응이 둘로 나뉘었단다.

‘아, 담임선생님이랑 같이 근무하니까 너 정말 힘들겠다.’

‘제자랑 같이 근무하는 네 담임선생님은 정말 부담스럽겠다.’

너는 뭐라고 했니? 내가 물었다.

“전 선생님이랑 있어서 좋다고 했어요. 선생님은요?”

“나도 좋지. 제자가 그 어려운 임용고시 합격해서 같은 학교에 근무한 거 아무나 못 할걸. 실제로 제자를 만난 것도 네가 처음이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거야.”


그때 난 생각했다. 아, 나는 좋은데 제자는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선생님이 됐는데 아직도 학생 때를 기억하는 담임선생님이 있어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난 어떤가? 제자랑 근무해서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좋은 게 훨씬 더 많았다.


1년 반을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내가 다른 학교로 발령받아 그 학교를 떠났다.

3월 학교를 옮기고 5월 스승의 날에 이혜수 선생은 발령받은 학교로 찾아왔다.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은영이와 같이 왔는데 활발하고 열정적인 아가씨로 멋지게 자랐다.


은영이는 선생님이 일 학년 입학하기 전에 보내 준 엽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아, 그때 ‘참 잘했어요.’ 도장 좀 찍어 주시지 정말 서운했어요.”

은영이는 지금도 여전했다. 말도 재미있게 하고 솔직했다. 그러게. 모든 애들 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 줄 걸 왜 그랬을까? 내가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더니 은영이가 ‘푸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엄마 아빠한테 졸라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샀잖아요!”

은영이는 그 도장으로 자기 공책 여기저기에 신나게 찍었단다.


우리는 옛날 1학년 때 추억과 요즘 만나는 남자 친구 얘기를 하면서 한참 동안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은영이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혜수 선생은 아직 없다며 소개해 달라고 했다.

요즘 학교에서 괜찮아 보이는 젊은 남자 선생님을 만나면 이렇게 묻는다.

“여자 친구 있나요? 내가 아주 멋진 여자 선생님을 알고 있는데.”

내 제자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란다. 그래야 행복한 교사가 되고 아이들을 더 사랑하는 교사가 되지 않을까? 아, 얼른 소개를 좀 해 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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