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이 뭔데? 공부가 뭔데?

by 맑은샘

# 저학년 임원선거: 회장이 뭔데?


임원선거를 하는 날이다. 1학년 때는 임원선거를 안 해서 2학년이 첫 선거였다.

반 아이들 30명 중에 20명이 회장 선거에 나왔다. 우리 반을 위해 깨끗하게 청소를 하겠다,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겠다. 선생님을 도와 전교에서 가장 멋진 반을 만들겠다며 다들 자기를 회장에 뽑아 달라고 했다.


집에서 포스터를 그려온 아이, 자기 얼굴이 나온 큰 사진을 들고 온 아이, 더러워진 실내화를 가져온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실내화를 들고 더러워진 실내화를 빨면 깨끗해지듯 자기가 회장이 되면 우리 반을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 반에서 제일 산만하고 떠들며 장난치는 자유로운 영혼, 우람이 까지 회장 선거에 나오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들은 “너도?”하며 깜짝 놀랐다.


앞에 아이들이 하는 소견발표를 들은 건지, 집에서 준비를 했는지 우람이는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회장이 되면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수업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겠습니다.”

맨 앞에 앉은 여자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우람아, 그건 당연한 거 아니니?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수업시간에 돌아다니지 않아야지”

“나는 당연한 거 아니거든.”

우람이는 당당하게 받아쳤다.


맨 뒤에 앉아 우람이랑 같이 장난치는 남자아이가 히죽거렸다.

“네가 진짜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수업시간에 돌아다니지 않을 수 있어? 진짜로?”

“진짜라니까!”

우람이는 발을 쿵 굴렀다. 왠지 불안한 기색이었다.


투표를 했다. 우람이는 돌아다니며 자기를 뽑아달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손으로 가리며 다른 아이 이름을 적었다. 아쉽게도 우람이는 회장이 되지 않았다.

“회장이 뭔데? 나 안 할 거야. 회장 아니니까 막 돌아다니고 선생님 말도 안 들을 거야.”

우람이는 심통이 나서 교실을 돌아다니며 중얼거렸다.

반 아이 중에 마음 약한 몇 명은 ‘뽑아 줄걸 그랬나’ 후회를 했고 몇몇 아이들은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학년 아이들은 순진했다. 자기 눈에 회장 역할을 제일 잘할 것 같은 아이를 뽑았다. 우람이 대신 회장에 뽑힌 아이는 여학생이었는데 발표를 잘하고 수업태도가 바른 아이였다. 선생님을 도와 전교에서 가장 멋진 반을 만들겠다고 한 아이였다.


우람이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그 아이에게 다가가 큰소리로 물었다.

"야, 회장, 어떻게 우리 반을 가장 멋지게 만들건대? 응 어떻게 할 거냐고?"

우람이는 회장 소리가 무척 듣고 싶었나 보다. 자꾸 그 아이에게 회장, 회장이라고 부르며 따졌다.


고학년이 되면 임원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확 줄어든다. 회장과 부회장을 뽑아야 하는데 희망자가 몇 명 나오지 않아 난감한 반도 있다. 임원에 대한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저학년 때는 ‘회장’이라고 관심 갖고 주변에 아이들이 북적거렸는데 고학년 ‘회장’은 부담은 크고 아이들에게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공부 잘하고 발표 잘하는 모범생들은 저학년 때 임원을 했다고 안 하려고 하고, 운동 좋아하고 잘 노는 아이들은 임원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학년 임원선거에서 가끔 예상치 못 한 일이 일어난다.



# 고학년 임원 선거: 공부가 뭐라고!


5학년 철이는 웃으면 눈이 감기고 입꼬리가 올라가 순식간에 스마일 캐릭터같이 변했다. 친구들 말에 잘 웃어주고, 재치 있는 말을 잘해서 철이 주변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인데도 순발력이 있어 축구를 잘했다. 남학생들과도 잘 어울리고 여학생과도 골고루 친하게 지냈다.


철이가 제일 친하지 못한 건 수학이었다. 5학년인데 아직도 구구단이 헷갈리는 저학년 수준이었다.

1학기 때는 방과 후에 남아서 나와 같이 수학 공부를 했다. 혼자 남아서 공부하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철이도 나도 참 끈질기게 나머지 공부를 했다. 기특해서 아이들 듣는데 ‘철이가 열심히 한다, 수학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하며 몇 번 칭찬을 했다.


그게 이유였을까?

2학기 때 철이가 회장이 되었다. 우리 반에는 공부 잘하고 리더십 있는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철이는 그 아이들과 겨뤄서 당당하게 회장이 된 것이다. 철이를 추천한 아이도 네가 될 줄 몰랐다며 놀랐다. 철이를 뽑은 아이들도 ‘설마 되겠어? 그래도 잘 난 척하는 애보다는 낫겠지’ 싶어 투표했다며 황당해했다.


제일 놀란 건 회장인 된 철이었다. 갑자기 회장이 되더니 철이가 달라졌다. 우선 꾸준히 남아서 하던 수학 공부를 피하기 시작했다. 회장이 되고부터 철이는 집에 일이 있다,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며 가 버렸다. 철이네 집안 형편이 어렵기도 했지만 학원을 가도 5학년 공부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일대일 맞춤형 공부를 했었는데 철이는 그게 다른 애들 눈치가 보이고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철이야, 회장이 됐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까워서 한마디 했는데 다음날 어머니가 오셨다.

철이 어머니는 아들처럼 동굴 동글한 인상에 웃음 가득한 얼굴이었다.

“선생님, 너무 공부시키지 마세요. 공부 못 하면 어때요? 아빠처럼 중국집 주방장 하면 돼요.”


철이 어머니는 밤새 아들을 설득하다 거꾸로 아들에게 설득당한 거 같았다. 왜냐면 1학기 때 철이 어머니는 나에게 따로 공부를 가르쳐 주는 걸 참 고마워했다. 그런데 회장이 된 아들이 싫다고 하니 엄마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회장 아들, 기를 세워 주려고 엄마는 어려운 걸음으로 학교를 찾아온 거였다.

철이 엄마는 끝까지 웃으며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철이가 하고 싶어 할 때 그때 보낼게요."


철이 엄마의 웃음에 나도 설득을 당했다. 교사로서가 아니라 그냥 엄마처럼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 알았어. 철아, 공부가 뭐라고!'


수학 좀 못 하면 어떠니? 네 말대로 하고 싶을 때 해도 늦지 않아. 회장 되고 나니 친구들 눈치 보이는 거 선생님만 눈치 없게 못 알아챘네. 네 마음이 그렇다면 선생님이 이해해야지. 성격 좋고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너는 뭘 해도 잘할 거야. 설마 나중에 아빠처럼 중국집 할 때 돈 계산을 못 해서 손해 보는 건 아니겠지? 하긴 요즘은 계산 기계 다 있어서 그런 걱정도 없겠다.


철이는 한 학기 동안 우리 반의 멋진 회장이었다. 수학 성적은 계속 내려갔지만 철이의 자존감은 급속히 올라갔다. 다른 반과 축구시합도 주선하고, 운동회 때 응원도 열심히 앞에서 했다. 그런 회장 경험은 철이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아마 그 자신감으로 철이는 다른 일들도 잘할 거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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