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같이 놀 걸

by 맑은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 언제일까? 어린이날! 노는 날이라고?

그럼 다시, 학교 오는 날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은? 바로 현장학습, 소풍 가는 날이다

혹시 운동회날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달리기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다. 달리기 못하고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아이들은 아주 싫어하는 날이다.


현장학습 가는 날은 모두에게 신나는 날이다. 조용한 아이들은 자기랑 맘에 맞는 단짝 친구랑 알콩달콩 간식을 나눠 먹고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좋아한다. 활발한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니며 좋아한다. 친구를 툭툭 건드리고 그러면 그 친구가 따라오고 그러면 낄낄 웃으며 새처럼 활개 치며 도망간다.


3학년 아이들과 민속촌으로 현장학습을 갔다. 볼 것도, 할 것도 많아 한참을 걸어 다녔다. 초가집, 기와집을 둘러보고 전통혼례를 보았다. 신랑 신부가 절하는 걸 보고 나더니 다음은 뭐하냐고 계속 물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게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떡메치기였다.


많이 걸어 배가 고픈 아이들은 얼른 떡메치기 하러 가자고 졸랐다. 느릿느릿 걷던 아이들도 떡메치기를 하러 간다니까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떡메 치는 장소에 도착하니 이런? 떡메 치는 도구가 3벌만 있었다. 우리 학년은 4개 반인데 어쩌나? 할 수 없이 1~3반 먼저 하고 4 반인 우리 반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우리 반 아이들 입이 부루퉁 나왔다.


앞 반 아이들은 김이 나는 떡을 커다란 떡판에 올려놓고 떡 방망이로 힘껏 내리쳤다. 부드러워진 떡을 콩가루에 묻혀 고소한 인절미를 만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엉덩이를 쳐들고 침을 삼키며 구경했다. 그 모습을 보니 속상했다.

나는 진행자에게 ‘4개 반이 오는데 4개를 놓아야지 왜 3개냐’며 따졌다. 그 사람은 미안하다며 떡을 좀 더 많이 드리겠다고 했다.

“얘들아, 우리 반이 늦게 하는 대신 떡메 더 오래 치고, 인절미도 더 많이 먹을 거래.”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기다렸다.


앞반 아이들의 떡메치기가 끝나고 우리 반 차례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미 앞반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며 방법을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기다리는 동안 몸이 근질근질했나 보다. 떡메를 어찌나 힘차게 내리치는지 찰싹찰싹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다음 아이는 더 크게 떡 방망이를 휘둘렀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천하장사가 된 것 같았다. 약속대로 다른 반보다 떡메치기도 몇 번 더 하고 인절미도 실컷 먹자 아이들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각자 집에 가져갈 떡도 듬뿍 챙겼다.


이럴 수가? 떡메치기가 끝난 후였다. 다른 반들은 우리가 떡메를 치는 동안 어디론가 다 가 버렸다. 황당했다. 떡메치기를 늦게 한 것도 속상한데 우리만 놔두고 다들 사라지다니! 어디로 갔는지 몰라 앞반 선생님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지만 받지 않았다. 아이들을 인솔하느라 들리지 않나 보다.


우리 반 아이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 길 찾기 패 와 놀기 패로!

똘똘하고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아이들은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중 대표가 반장 우진이었다.

“선생님, 어디로 가야 해요?”
“점심 먹으러 간 거 아닐까요?"

"안내도에 보면 이쯤 같은데.”

어느 틈에 안내도까지 펼쳐 들고 아이들은 심각하게 길을 찾고 있었다.


흥 많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슬슬 내 주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저기 그네 타도 돼요?”

“와, 널뛰는 것도 있어요."

"투호도 있네. 해도 되지요?”

산 밑 넓은 공터에 있는 그네와 널뛰기를 보고 놀자는 아이들.

처음에는 길 찾기와 놀기 패가 반반쯤 되었는데 점점 놀기 패가 많아지더니 내 옆에는 반장 우진이만 남았다.

나는 당황스러워 땀이 삐질삐질 났다. 다시 선생님들께 전화했지만 여전히 연락이 안 되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다른 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우진이가 안내도를 들이밀었다.

“선생님, 우리가 그냥 찾아가요. 안내도에 보면 여기 이쪽 같아요.”

우진이는 안내도에 의자 표시가 된 곳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이쯤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기억이 났다.

“그래. 맞다. 아까 우리 줄타기 공연 봤던 곳 근처니까 저 나무 쪽으로 가면 되겠구나.”

내 말에 우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 저쪽이 아니라 이쪽 같은데요?”

“뭐?”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나는 길치였다. 운전은 잘하는데 길은 못 찾는다. 누구는 한번 갔던 길을 일 년 뒤에도 찾아갈 수 있다는데 난 열 번을 가도 늘 처음 가는 길처럼 새로웠다. 어떤 때는 갔다가 돌아오는 길도 처음 가는 길처럼 낯설었다.


나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무리 길치라고 3학년 아이보다는 내가 낫겠지?’

‘아냐. 우진이가 더 길을 잘 찾는지도 몰라.’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앞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반가웠다.

“선생님, 어디예요? 아이들 다 자리에 앉아서 점심 먹는데 4반이 안 보여서 전화했어요.”

난 지금이라도 통화가 되어 다행이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점심 먹는 장소는 나무 쪽이 아니었다. 우진이가 말한 쪽이 맞았다.


아, 난 3학년 아이보다 길을 더 못 찾는 길치 선생님이었다. 놀고 있는 아이들을 다 오라고 해서 점심 식사 장소로 가는데 속상하고 부끄러웠다.

‘떡메치기 늦게 한 것도 서러운데 우리 반만 남겨 두고 다들 가버리다니. 하지만 그것보다 더 서러운 건 아, 난 왜 그렇게 길을 못 찾을까? 3학년보다 더 길을 못 찾는 길치라니.’


우진이와 우리 반 아이들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 뒤를 따라왔다. 드디어 3학년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곳에 도착했다. 밥을 먹고 있던 다른 반 아이들은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물었다.

“야, 너희 반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 일이 없다는 듯 덤덤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나의 부끄러움이 드러날 순간이라는 걸 직감했다.


“우리 반은 신나게 놀다 왔어.”

"정말 재밌었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우리 선생님이 길을 못 찾아서 늦었다고 말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그런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대신 그 시간에 그네 타 기하고 널뛰기한 것, 투호놀이, 산기슭에서 술래잡기하며 논 것을 다른 반 애들에게 자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반 아이들은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아, 난 길치 샘이라고 소문날까 봐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웬걸 아이들은 오래 놀아서 좋았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현장학습에서 제일 즐거웠던 일은 뭐냐고 물었다. 신랑 신부 전통혼례와 하늘 높이 매단 줄에서 부채 들고 재주넘는 줄타기가 재미있었다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은 내가 길을 못 찾아 헤매는 그 시간 동안, 맘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놀아서 아주 좋았다고, 그게 제일 즐거웠다고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떡메치기를 늦게 했다고, 선생님이 길을 못 찾았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은 그 시간을 즐기면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다. 그래. 떡메치기를 좀 늦게 하면 어때? 더 오래 떡메치고 떡도 더 많이 먹었는데. 길을 좀 잃으면 어때? 어차피 다 만날 건데. 문득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말고 나도 그냥 아이들과 같이 놀 걸 그랬나 봐.'


keyword
이전 16화회장이 뭔데? 공부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