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뭐니?

by 맑은샘

2학년 된 첫날, 반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주영이 첫인상은 흥, 하고 고개를 돌리며 삐지기 일초 전 모습이었다. 볼은 다람쥐처럼 볼록하고 눈은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입은 불쑥 나와 있었다. 자기 이름만 말하고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말이 없는 아이로 보였다.


주영이가 말을 하자 아주 다른 모습이 되었다. 볼록한 턱을 일초 간격으로 앞뒤로 흔들고 내리깔던 눈을 치켜뜨며 “뭔데? 뭔데?”를 반복했다. 애들이 뭐라고 말해도 듣지 않고 계속 따졌다.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듣지도 않는 주영이 주변에는 친구들이 없었다. 주영이는 자기들끼리 노는 아이들을 째려보았고 간혹 같이 놀자고 불러도 고개만 흔들었다.


어느 날, 주영이 자리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주영이 책상 위에는 집에서 가져온 스티커, 캐릭터 지우개, 인형들이 있었다. 주영이는 자기 맘에 드는 애에게 먼저 고르라고 했고, 싫어하는 아이는 손도 못 대게 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주영이 자리에 모여서 눈치를 살폈다. 주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면 가져가고 흔들면 다른 걸 골라야 했다. 주영이는 대장처럼 자기 맘대로 했다.


그런 것도 한두 번이었다. 갈수록 주영이가 가져오는 것들이 점점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이들이 더 이상 자기에게 오지 않자 주영이의 입은 더 튀어나왔다. 친구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자주 삐졌다. 가끔 수업 시간에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날은 공개수업 심사를 하는 날이었다. 다른 학교의 교장, 교감선생님이 수업심사를 하러 우리 반에 오셨다. 나는 이 수업심사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수업자료를 직접 만들고, 아이들이 좋아할 말놀이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즐거운 국어 수업을 하기 위해 나부터 신나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하려고 수업 시작하기 전에 부르던 노래를 불렀다. 주영이는 입을 달싹도 하지 않았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보니 불룩한 입이 코앞까지 나와 있었다.


나는 밝은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번 시간에는 재미있는 말놀이 공부를 할 거예요.”

“재미없거든요.”

주영이의 말에 뒤에 앉았던 다른 학교 교장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나는 속으론 가슴이 철렁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영이도 공부하다 보면 재미있을 걸?”

“흥!”

주영이는 고개를 홱 돌리며 대놓고 삐진 표시를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주영이는 오랜만에 자기를 맘 놓고 드러냈다. 심사위원이 있어서 내가 제대로 야단을 못 치는 걸 알았나 보다. 직접 만든 자료를 칠판에 올려놓았더니

“안 보이는데요.” 하며 일부러 몸을 더 낮추었다. 의자 아래로 내려갈 기세였다.


말놀이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며 '할머니, 어머니, 언니' 단어를 칠판에 썼다. 다른 아이들은 끝나는 말이 똑같이 ‘니’ 자라고 하는데 주영이 혼자만 ‘뭐니, 뭐니, 뭐니?’하고 소리쳤다. 모둠끼리 말놀이를 하는 활동에서는 자기가 하겠다고 우기면서 다른 아이들은 못 하게 했다. 그중에 한 아이는 주영이 때문에 말놀이를 시작도 못 했다고 울먹거렸다. 주영이는 왜 자기 때문이냐며 발을 쾅쾅 굴렀다. 그 모둠 아이들이 주영에게 뭐라고 하자 주영이는 책을 확 밀치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대놓고 삐진 표시를 하며 우는 거였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렸다. 정리 단계를 하지도 못했는데 수업시간이 벌써 끝났다. 심사하러 오신 교장, 교감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어려서 그렇다, 월요일 1교시라 더 힘들었겠다며 격려해 주고 가셨다.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날 집에 가기 전 주영이가 나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선생님, 저 수업 시간에 잘했어요?”

“언제?”

“아까 선생님들 와서 볼 때요.”

“주영이 생각엔 어때?”

“잘한 것도 있긴 한데 못 한 게 더 많아요.”

“음. 그렇구나!”

“다음엔 더 잘할게요.”

늘 삐쭉거리고 불퉁불퉁 화를 내던 주영이가 그 말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주영이의 얼굴이 화사한 꽃처럼 예쁘게 피어났다. 웃는 모습이 이렇게 예쁜 아이였나 싶었다.

왜 그런 말을 하고 왜 그렇게 웃었을까? 주영이가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나? 아니면 나도 자기처럼 울고 싶은 걸 알았을까? 자기처럼 나도 삐져 보여서 관심을 보인 걸까?


결국 수업심사에는 떨어졌다. 그날 수업은 내가 생각해도 엉망이었다. 울고 싸우고 시간 안에 끝내지도 못하고. 평소 수업보다 훨씬 정신없었다. 나는 일 년 동안 주제 정하고 수업을 재미있게 해 보려고 노력한 것이 아무 결과 없이 끝나 너무 속상했다. 얼마동안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혼자 억울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업만 생각하면 웃음이 났다. 그때 일부러 '뭐니? 뭐니?' 하며 장난치던 주영이가 떠올랐다. 비록 수업 심사 등급은 없었지만 그날 수업에 대한 기억은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했던 수업 중에 가장 기억나는 수업이 바로 그날 수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업 끝난 후 다가와 말을 걸며 살며시 웃던 주영이의 웃음, 그 교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준 그 웃음은 내가 절대로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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