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선생님은 40분 수업시간 내내 강단 위에서만 지도했다. 아이들 곁에 내려온 적이 한번 도 없었다.
차려 자세를 가르칠 때도, 막기 동작을 가르칠 때도 앞에서만 했다.
앞쪽 아이들 목소리는 점점 커지는데 뒤쪽 아이들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뒤에서 보니 태권도 선생님은 아주 멀어 보였다. 앞에서 하는 태권도 선생님의 시범 동작도 뒤쪽 아이들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배운 아이들은 잘 따라 했지만 처음 하는 아이들은 어려워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힘없이 팔을 뻗는데 선생님은 여전히 앞에서만 가르쳤다.
갑자기 나의 초임교사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교사가 앞에서 가르칠 때 아이들이 가장 잘 배우는 줄 알았다. 칠판 앞,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목청껏 가르쳤다. 일주일에 이삼일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를 받아가며 여전히 소리를 질렀다. 그게 최선을 다하는 교사라고 생각했다.
잘 모르는 게 있는 아이는 공부시간이 끝나도 집에 보내지 않았다. 늦더라도 남겨서 제대로 배우게 하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어 아이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는데도 일부러 못 본 척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과 함께 오래 있다 보니 아이들 마음이 전달되나 보다. 교사인 내가 미처 못 알아차린 아이들만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본다.
“왜 못 했니?”
“왜 늦었니?”
“왜 싸웠니?”
그러면 아이들은 이르듯이, 속상한 듯이,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속마음을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안 깨워 줬다고요."
"쟤가 먼저 나를 때렸어요."
그래. 너희들이 못 할만한, 늦을 만한, 싸울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러면서 아직도 난 너무나 많이 부족한 교사임을 느꼈다.
교사는 앞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교단 앞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아이들은 선생님이니까, 어른이니까 하며 그냥 흘려듣고 만다.
아이들이 다 가고 없는 빈 교실, 나도 아이들처럼 맨 뒤에 있는 조그만 의자에 앉아보았다.
교실 앞에 있는 칠판이 한참 멀어 보였다. 아이들 눈에는 얼마나 더 멀어 보일까?
칠판 앞에 서 있는 내가 얼마나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까?
내가 하는 말도 딴 세상 말처럼 들리는 게 아닐까?
그 뒤 나는 아이들과 얘기할 때 가능한 아이들 곁에 가서 들었다. 물어보는 아이가 앉아있는 책상 옆으로 갔다. 몸을 낮춰 아이와 눈을 마주 보았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생각할 때 너무나 기본적인 걸 물어보았다.
그때 솔직히 실망감이 확 올라온다.
‘아, 나는 가르치는 실력이 부족한가? 왜 아직도 이걸 모른다고 할까?’
그래도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나를 책망하기보다, 모르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보다 그냥 이게 이 녀석에게는 미적분 수준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거구나 하고 말이다.
칠판에서 여러 번 설명하고, 수학 익힘책을 풀면서 또 알려준 그 문제를 마치 처음 보는 문제처럼 다시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