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원 동전

by 맑은샘

3월, 2학년 우리 반에 남자아이 한 명이 전학을 왔다. 할머니와 같이 왔는데 "내 이름은 오진호야"하면서 큰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키는 작지만 제법 똘똘해 보였다. 진호는 앞자리에 앉았는데 수업시간에 자꾸 벌떡 일어났다. 처음에는 화장실 가는 건가 했는데 창밖을 슬쩍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전학 온 첫날이라 조용히 지켜보았다. 조금 있다 진호는 다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창밖을 보더니 아예 교실 뒷문에 나가 문을 열고 누가 왔나 살펴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진호는 "그냥요"했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진호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수업 끝나고 할머니가 데리러 와서 그 얘길 했더니 흠칫 놀라셨다.

“실은 선생님, 진호는 부모가 갑자기 이혼하게 된 게 아직 믿기지 않나 봐요. 아마 자기 엄마가 데리러 오는 줄 알고 기다리나 보네요. 요즘 젊은 부부는……. 아시잖아요. 나한테 애만 맡기고 그냥 가버렸어요.”

거의 한 달 동안 진호는 미어캣처럼 벌떡벌떡 일어나 복도 쪽을 보고 답답하면 뒷문에 나가 문을 열어보았다. 그러다 지쳤는지, 아니면 엄마가 오지 않을 걸 아는 건지 벌떡 일어나는 행동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다행히 진호가 학교에 흥미를 가질 만한 일이 생겼다. 우리 학교는 토요일에 선생님과 함께 하는 주말버스 프로그램을 했다. 주말버스는 토요일에 혼자 있는 학생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체험활동을 가는 행사였다. 그해 주말버스 진행이 내 업무라 아이들을 인솔하게 되었고 진호도 신청해서 우린 주말에 자주 만났다.


4월, 시청에서 주말버스 개교식을 했다. 아이들과 담당교사 외에도 다른 학교 선생님, 교장선생님들이 참석했다. 진호는 신이 났는지 괜히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횡단보도를 지나는데 교통 봉사하는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호통쳤다.

“저기, 학생! 그렇게 뛰어다니지 말고 줄 맞춰 건너야지!”

‘이런, 노는 날 자유롭게 가는 활동인데 무슨!’

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진호를 불렀다.

“진호야, 괜찮아. 선생님과 손잡고 같이 가자.”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던 진호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진호는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한 손은 높이 들며 당당하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5월, 주말버스 프로그램은 서울로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가는 거였다. 버스를 타자마자 아침밥을 안 먹은 아이들이 많아 빵과 음료수를 나눠줬다. 진호도 아침을 안 먹었는지 받자마자 후다닥 먹어치웠다. 나는 아이들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챙겨주느라 거의 내릴 때쯤 빵을 뜯었다. 바스락 소리에 진호가 나를 쳐다봤다.

“어? 선생님, 또 먹는 거예요?”

“아니? 아까 안 먹은 건데.”

진호는 더 먹고 싶은지 침을 꼴깍 삼켰다. 나는 빵을 반으로 나눠 진호에게 슬쩍 내밀었다. 진호는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빵을 먹었다.


뮤지컬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했다. 진호는 손을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여기 엄마 아빠랑 와 봤어요.”

“그래? 부모님이랑 뭐 했어?”

“처음엔 구경했는데 싸워서 그냥 집에 갔어요.”

진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뮤지컬은 ‘해님 달님’ 공연이었다. 오누이를 잡으러 호랑이가 나오자 아이들은 뮤지컬에 빠져들었다. 호랑이가 나무에 올라간 오누이를 찾느라 물었다.

“얘들아, 이 녀석들 어디 갔는지 아니?”

구경하던 아이들은 “몰라, 몰라.”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진호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일어섰다 앉았다 반복하다가 이렇게 소리쳤다.

“안 돼. 안 돼. 나무는 절대 쳐다보지 마.”

그 말을 들은 호랑이는 나무로 다가갔고, 진호는 자기 때문에 오누이가 잡힐까 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공연이 끝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미리 주문을 해 놓았는지 아이들은 돈가스, 교사들은 비빔밥을 나눠줬다. 차림표를 보니 비빔밥과 돈가스 가격이 똑같았다.

진호가 불쑥 말했다.

“왜 선생님만 비빔밥이에요?”

“너 비빔밥 먹고 싶니? 네 돈가스랑 바꿔 먹을까?”

진호는 “아니요. 괜찮아요.” 하며 돈가스를 크게 한 입 먹었다.

“아쉽다. 선생님도 돈가스 먹고 싶었는데.”

진호는 내 비빔밥을 먹고 싶어 했고 나는 진호의 돈가스가 먹고 싶었다. 나도 그냥 아이들과 똑같은 돈가스를 먹는 게 더 좋았는데 좀 아쉬웠다.


주말버스에 참여하면서 진호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처음 전학 와서는 복도를 왔다 갔다 산만하던 진호가 점점 의젓해졌다. 아이들과 잘 지내고 나를 만나도 툭툭 말을 잘 걸었다. 그렇게 진호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3학년이 되어 우리 교실을 떠났다.


다음 해 스승의 날, 진호가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 저 진호예요. 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3학년이 됐는데 선생님이 시간 될 때 우리 교실로 놀러 오세요. 선생님, 아이들 가르쳐주시느라 힘들죠? 선생님을 애쓰시개 하고 힘드시개(틀린 것 그대로) 해서 죄송해요. 이것은 지금까지 가르쳐 주신 보람으로 드리는 것이에요. 이거 받고 힘내세요.’


'이거? 보람으로?'

나는 그게 뭔지 궁금했다.

편지지 옆에 테이프로 붙인 게 보였다.

'이게 뭐지?'

아! 그건 ‘오백 원’ 짜리 동전이었다.

나는 찌르르 감전되는 것 같았다.

껌 한 개, 사탕 한 개도 아쉬운 진호가 이거 붙이려고 얼마나 큰 마음을 먹었을까?

백 원짜리로 할까, 오백 원짜리로 할까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


진호는 편지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선생님이 학교 정문에 인사하러 나올 때(그 학교는 교사들이 돌아가며 아침맞이를 했었다.)

인사도 하고 마음 편하게 해 드릴게요. 아자아자 파이팅!

선생님을 존경하는 진호 올림‘


스승의 날이 되면 아이들에게 편지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오백 원 동전을 붙인 편지를 받은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진호에게 이 돈은 얼마나 귀한 건데. 할머니가 주는 용돈을 다 준 건 아닌지? 선생님이 먹는 거 보면 먹고 싶고, 선생님이 하는 거 보면 같이 하고 싶던 진호. 그런 어린 진호에게 오백원은 거금인데. 나는 마음 한켠이 울렁이며 잔잔한 파도가 이는듯 했다.


'마음 편하게!'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다는 진호의 편지를 보자 갑자기 나는 진호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진호야, 네 마음은 편하니? 이제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는 거 맞니? 선생님 마음을 걱정해 주다니 정말 고마워. 난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단다. 그러니 진호 너도 마음 편하게 잘 지내렴. 나도 너를 많이 많이 사랑한다.


정성껏 답장을 써서 보내고 진호 편지는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다. 가끔 문득 진호가 궁금할 때 요즘도 가끔 꺼내어 읽어 보며 웃는다. 진호야, 너도 잘 지내고 있지?

keyword
이전 18화뭐니, 뭐니, 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