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교실

by 맑은샘

어릴 적엔 꿈이 세 가지가 있었다. 바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선생님이 꼭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심심하지도 않고 누구의 잔소리도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올림픽이 있던 1988년 3월, 드디어 나는 교사로 발령을 받아 바쁜 어른 선생님이 되었다.


발령받은 학교는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쯤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 학교는 60 학급이 넘는 큰 학교였다. 한 반 학생 수가 50명이 넘었는데도 교실이 부족해 삼 학년까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했다. 난 일 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하필이면 바로 교장실 옆 교실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해 입학생이 많아 교장실의 반을 일 학년 교실로 만들도록 내준 것이었다.


그때 교실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요즘 교실은 컴퓨터와 연결된 대형 TV, 실물화상기가 있어 영상자료나 아이들의 작품을 즉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뭐든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교과서에 없는 노래를 가르치려면 전지에 가사를 크게 적어서 괘도를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악보 한 장을 주려면 ‘가리 방’으로 인쇄를 해야 했다. 지금은 복사기에 넣고 누르면 선명한 악보가 척척 나오지만 그때는 철필로 가사를 쓰고 가리 방에 붙여 검은 잉크 룰러를 밀어서 한 장씩 만들었다. 철필은 잘 눌러쓰지 않으면 글자가 흐리게 나왔고 너무 세게 쓰면 종이가 뚫어져 까맣게 나왔다. 나는 그런 가리 방 악보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노래를 가르쳤다.


우리 반 교실엔 교탁 바로 옆에 풍금이 있었다. 나는 풍금을 치며 반 아이들과 노래를 불렀다. 들썩거리는 일학년 아이들과 함께 한 초짜 교사의 교실은 종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부를 시작할 때도 말이 필요 없었다. 풍금으로 길게 ‘도미솔’ 화음을 누르면 아이들은 바른 자세로 앉아 앞을 바라보며 ‘흠흠’ 목청을 다듬었다. 드디어 시작되는 공부 시간, 우리 반이 제일 먼저 부르는 노래는 바로 ‘우리 반노래’였다.


“우리들은 일 학년 귀염둥이랍니다. 예쁜 친구들, 예쁜 선생님, 우리들은 일 학년.”

아이들이랑 노랫말을 만들고 내가 곡을 만든 노래였다. 수업을 시작하고 끝낼 때마다 불렀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이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다. 자기들이 직접 만들었고 자기들만 아는 노래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국어 시간에는 노래로 글자를 배웠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을 배울 때는 ‘작은 별 노래’에 맞춰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글자를 썼다. 청소할 때 부르는 노래, 이 주일의 노래, 이 달의 노래, 거기다 우리 반 노래까지.


방음도 잘 안 되는 옆 교실에서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니 교장선생님은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삼 교시쯤이면 교장선생님은 교장실을 나가곤 하셨다. 교장선생님은 운동장을 빙 돌고 학교 교실을 층층이 한 바퀴씩 돌아다니셨다. 선배교사들이 말했다.

“노래 좀 그만해. 교장선생님이 방황하며 온 학교를 돌아다니시잖아.”

실은 교장선생님이 자주 학교를 순시해서 선배교사들이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한 번도 우리 반이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합창반 지도를 하라고 맡기기까지 하셨다. 난 일 학년 수업을 하고 나서 방과 후 노래 잘하는 학교 합창단 아이들에게 소프라노와 알토 성부를 나눠 노래를 지도했고 연말에는 합창대회까지 나갔다. 교장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잘한다고 멋지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교장선생님은 괜찮으신 거라며 교장실 바로 옆 교실에서 그 해가 다 가도록 우리 반 아이들과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이제 내가 교장선생님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교장선생님 눈에 내가 얼마나 철없고 순진하게 보였을지 웃음이 난다. 어른이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초짜 교사가 일 학년 아이들과 신나게 노래하라고 교장실을 비워주는 아량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노래를 그만하라는 말 대신 마음껏 더 노래하라고 합창단까지 맡기고 잘했다고 격려해줄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구나 싶었다.

keyword
이전 11화우리는 여러분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