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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
10화
미국? 아빠 차 타고 갔지
by
맑은샘
Apr 28. 2021
아이들이 다 간 늦은 저녁, 교실에 있는데 뒷문에서 살짝 인기척이 들렸다.
나가 보니 주은이었다.
가끔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만 자신감 있고 명랑한 아이였다.
“주은아, 교실에 뭐 두고 갔니?”
“아니요, 누가 왔어요.”
“어디에?”
“우리 집에 누가 왔어요.”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누가 주은이 집에 왔단 말인가?
일 학년인데 아직 글을 못 읽는 주은이. 처음엔 자기 차례가 되면 그냥 읽고 싶은 대로 막 읽었다. 글을 아는 아이들이 '뭐야 뭐야. 틀리게 읽잖아!' 하자 그제야 받침 없는 글자 읽기를 따로 배우는 중이었다.
읽기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을 하고도 잘 잊어버려 앞뒤가 안 맞았다.
그래서 주은이 말은 한참을 가만히 자세히 귀 기울여 들어야 알 수 있다.
나는 주은이가 이 늦은 시각에 학교로 왜 달려왔는지 알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누가 왔어? 나쁜 사람이 왔니?”
아니요.
그럼 좋은 사람이니
? 아니요.
그럼 어떻게 왔니? 네가 문을 열어 줬니?
그냥 있었어요. 집에 있었어요.
누군데?
, 누가 아니에요.
누가 아니면 그럼 뭐지?
뭐 아니고 아무도 없었어요.
아~! 그래 아무도 없었구나. 그래서?
으스스한 생각이 났어요.
주은이가 그런 생각이 들었구나. 그래서? 으스스한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했니?
학교로 왔어요.
그전에 어디 있었는데?
학원에요.
학원 갔다 왔니?
네. 학원 갔다가 집에 왔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었니?
네. 그래서 무서웠어요.
그래서 학교에 왔니?
네.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나는 주은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그랬구나. 선생님 생각이 나서 학교에 왔구나. 엄마한테 전화해 볼게. 주은이가 혼자 무서운데 언제 오시는지 알아볼게”
“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 엄마 핸드폰 번호 알아요?”
“그럼, 선생님은 다 알지.”
"와, 선생님, 정말 최고예요."
주은 엄마는 내 전화를 받고도 한참 있다 학교에 왔다.
원래 주은이는 공부 끝나고 엄마 직장이 끝날 때까지 학원
에 있어야 했단다. 그런데 그날은 주은이가 아무 말 없이 집에 갔고 학원에서는 그걸 몰랐다고 했다. 주은이는 엄마가 학교로 오자 신이 났다. 엄마랑 같이 가는 게 좋아서 펄쩍펄쩍 뛰며 교실을 나섰다.
주은이는 키가 커서 뒷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키 큰 아이들이 보기엔 주은이는 어린 동생 같았다. 게다가 성격이 활발한 편이라 자꾸 나서기를 좋아해 친구들이 잘 끼워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주은이가 친구들에게 미국 이야기를 했다.
“난 미국에서 살 거야. 엄마 아빠가 이제 곧 미국으로 이사 간다고 했어.”
미국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솔깃해서 주은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언제 가는데?”
“금방 갈 거야. 예전에도 살았거든.”
아무리 일 학년이라도 슬슬 이상한 느낌이 드는지 질문이 매서워졌다.
“금방이면 어디로 가는지도 알겠네?”
“알지. 미국에 간다니까!”
아이들은 살았으면 영어를 해 보라고 했지만 주은이는 영어는 몰라도 된다며 미국도 우리나라랑 비슷하다고 했다. 그때 옆에 앉은 짝이 물었다.
“미국 갈 때 어떻게 갔어?”
“아빠 차 타고 갔지.”
한껏 호기심을 갖고 주은이 주변에 모였던 아이들이 ‘그럴 줄 알았다니까’하는 표정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주은이는 1학년이 다 끝날 때까지 미국에 가지 않았다. 처음엔 친구들이 언제 미국 가냐며
물었는데 차츰 다들 잊었는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가끔 주은이는 방과 후 어스름한 저녁에 교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교실에 불이 켜있어서 왔어요. 아직도 있어요?”
돌봄교실 때문에 밤 9시까지 있다고 말하면 주은이는 그렇게 깜깜할 때까지요? 하며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네가 더 걱정이야. 깜깜할 때 돌아다니면 안 돼 주은아,
예쁜 네가 혼자 돌아다니기엔 세상이 너무 무섭단다.
주은이는 태권도 학원 언니 오빠들이랑 학교에 놀러 온 거라며 교실 가득 밝은 기운을 남기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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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학교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
08
우리 집도 살 거예요
09
친아빠한테 미안하잖아.
10
미국? 아빠 차 타고 갔지
11
우리는 여러분 아니지?
12
노래하는 교실
학교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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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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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 저자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 곁에서 편을 들어주고 응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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