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도 살 거예요

by 맑은샘

입학식 날, 웅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동사무소에 알아보고 여러 군데 연락을 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튿날 수업이 다 끝나고서야 웅이는 엄마와 함께 왔다. 추운 날씨에 웅이는 얇은 잠바를, 엄마는 낡은 카디건을 입고 왔다. 게다가 웅이 엄마에게서 담배 냄새가 확 났다.


웅이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큰 키, 똘똘한 눈빛이 참 씩씩해 보였다.

웅이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어제는 입학식인 걸 몰랐고 오늘은 늦잠을 자서 늦었다고 했다. 죄송하다며 다음부터 일찍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날 이후에도 웅이는 자주 늦게 왔고, 가끔 결석했다.

그럴 때 엄마 핸드폰은 울리기만 할 뿐 받지 않았다.


날이 좀 따뜻해진 4월, 웅이가 유난히 기운 없어 보였다.

“웅이야, 아침 먹었니?”

“아니요.”

“그럼, 어제저녁은?”
“저녁도 안 먹었어요.”
“엄마는? 엄마 안 계셨어?”

“엄마는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하다가 혼자 치킨 시켜 먹었어요.”

“너는 안 먹고?”
“네. 우리는 자느라 안 먹었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설마 엄마가 혼자 치킨을 먹고 애들은 굶겼겠어?

저녁에 뭔가를 먹었는데 애들이 기억을 못 한 거겠지.


웅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웅이 엄마는 거의 끊어질 때쯤 전화를 받고는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많이 먹을 때라서 그래요. 집에서 밥은 안 하지만 식당에서 짜장, 백반을 주문해서 먹여요.

하지만 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식당에서 밥을 시켜 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돈이 없으면 굶었다.


2학년 누나와 1학년 웅이는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다 분식집에서 공짜로 주는 어묵 국물을 얻어먹었다. 웅이는 돌봄교실에서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데도 그냥 갔다. 엄마는 웅이가 빨리 집에 오는 걸 원한다며 밥 먹기 전에 보내달라고 했다. 집에서 저녁을 차려주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엄마에게 돌봄교실에서 저녁 급식을 먹고 가면 어떻겠냐고 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라 무상지원이 된다고 했더니 그제야 허락했다. 아마도 엄마는 저녁을 먹으면 돈을 내야 하는 줄 알았나 보다.

웅이 엄마는 온통 게임에 빠져 아들딸의 학교생활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웅이는 그 뒤 점심은 반에서 먹고 저녁은 돌봄교실에서 먹었다. 맛있게 골고루 다 먹어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실은 웅이에게 학교에서 먹는 밥은 생명의 양식이었다. 저녁까지 든든히 먹고 간 웅이는 더는 늦은 밤 분식집 앞을 서성거리지 않았다.


어린이 날이 가까운 5월 초, 아이들과 1교시를 막 시작하려는데 교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기는 경기아동보호 전문기관입니다. 선생님 반에 김웅 학생 있지요?”

“오늘 결석했는데 무슨 일인가요?"

“어제 이웃에서 아동 방치로 신고가 들어와서 저희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알고 계셨나요?”

“아니요? 엄마가 혼자 아이들을 기르는 건 알지만, 방치라니요?”


수업이 끝나고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전화를 했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웅이 엄마가 지난 주말에 구치소에 들어가서 이번 주 내내 누나랑 둘이서만 있었단다. 그러다 어제저녁에 이웃 주민의 신고로 아동보호기관에 가게 되었다. 지금 누나랑 같이 있는데 앞으로 1~2주 정도 있으면 거취가 결정된다고 했다.


웅이는 오랫동안 결석했다.

기관에 연락해 보니 웅이가 한참 동안 그곳에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누나 담임교사와 함께 남매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웅이 사물함에 있던 물건과 필요한 학용품 몇 개와 간식을 조금 사 가지고 갔다.


웅이는 우릴 보고 입이 활짝 벌어졌다. 누나도 같이 나오자 웅이는 더욱 기쁜 표정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챙겨 간 사물함 물건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학교로 돌아갈 건데 왜 가져왔냐는 눈치였다. 대신 새 학용품과 간식은 좋아했다.


“여기서 지내는 건 괜찮니?”

“네. 좋긴 한데 누나랑 같이 있고 싶은데 안 된대요.”

“왜 안 된대?”

“남자랑 여자랑 지내는 곳이 따로 있어서요. 밥 먹을 때나 만날 수 있어요.”


웅이와 누나는 그동안 그곳에서 지낸 얘기를 했다.

학교처럼 공부시간도 있고 놀이 활동도 해서 재미있다고 했다. 여기서 공부를 하고요, 저기서는 책을 읽어요. 놀이 활동은 다른 층에서 하고요. 둘은 우리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개했다. 하지만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실은 웅이는 엄마와 만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웅이 엄마는 가까운 친지들의 도움을 여러 번 받고도 이번에 또 다른 사람에게 큰돈을 빌렸단다. 빚을 갚아야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는데 그걸 모르는 웅이는 집에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친지 중에 웅이 엄마의 빚을 해결해 주거나, 웅이와 누나를 맡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웅이와 누나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장기간 돌봄시설로 가야 했다.

처음에는 위탁가정을 추천했다. 위탁가정은 4~5명 이내로 가정 같은 분위기지만 남녀를 따로 받는 곳이 많았다. 둘이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웅이 남매는 결국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시설로 가게 되었다.


얼마 후 웅이와 누나는 시설이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우리 학교에는 한 번 와 보지도 못 하고 그냥 서류만으로 전출 처리를 했다.


우리 반에 웅이가 머물렀던 흔적이 하나 남아 있었다.

교실 앞판에 있는 나의 꿈 소개란이었다. 웅이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거였다.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박지성’이라면서 자기도 그런 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의 꿈 소개란'에는 웅이 얼굴이 나온 사진과 웅이가 직접 쓴 꿈이 있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돈 많이 벌면 엄마한테 용돈 드리고 우리 집도 살 거예요.”

웅이의 간절한 꿈, 멋진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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