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빠한테 미안하잖아.

by 맑은샘


주원이는 군인처럼 짧게 자른 머리가 잘 어울렸다. 그래서인지 잘생긴 얼굴이 돋보이고 당차 보였다. 깔깔 웃고 장난치는 일학년 아이들 사이에 주원이는 혼자 말없이 앉아있었다.

“학교 오니 기분이 어떤가요?”

“좋아요.”

“친구들이 있어서 재미있어요.”


아이들의 대답 속에 작은 소리가 언뜻 파묻혔다.

“학교는 없어져야 해.”

작은 소리를 따라가 보니 주원이었다.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중얼거렸다.

“격파시켜. 학교는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 집도 싫어.”


주원이는 얼핏 보면 바른 자세로 앉고 말썽도 부리지 않아 반듯해 보였다. 하지만 자기 기분이나 감정을 나타낼 때는 아이답지 않은 분노가 있었다. 그러면서 친구나 교사의 눈치를 살피고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여자 아이들, 특히 활발하고 적극적인 몇몇 애들이 주원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우리 같이 놀래?”

숫기가 없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주원이는 슬며시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주원이는 달리기를 좋아했다. 달리기 할 때 주원이는 새처럼 날쌔고 가벼웠다. 어찌나 빠르던지 휙 바람 소리가 날 정도였다. 우리 반에서 주원이를 따라잡을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깥 놀이 활동을 할 때 주원이는 아이답게 활짝 웃고 신나 보였다.

주원이가 관심을 보인 아이는 우리 반 남자애 중에서 가장 작은 아이였다. 애들이 몸집이 작다고 ‘유치원생’이라고 놀렸다. 주원이는 놀리는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하지 마. 놀리는 건 나쁜 거야.”

아이들은 다시는 그 애를 놀리지 않았다.

학부모 상담 주간에 주원이 엄마가 오셨다. 젊고 예쁜 분이었다. 주원이 학교 이야기를 쭉 듣더니 솔직하게 가정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 주원이가 어리지만 속은 어른 같은 면이 있어요.”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나요?”

“엄마 걱정하느라 아이답지 않게 자라는 것 같아 속상해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주원이는 오랫동안 엄마와 둘이 살았다. 얼마 전에 엄마는 좋은 분을 만나 재혼했는데 주원이는 아저씨라고 부르며 밀어내고 있단다.

그 말을 하는 엄마의 얼굴에 아들 걱정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주원이는 엄마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엄마, 내가 꼭 아빠라고 불러야 해?”

“아니,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괜찮아.”

주원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길래 엄마가 슬쩍 물었단다.

“주원아, 너 아빠라고 부르기 싫어서 그러니?”

“아니, 친아빠한테 미안하잖아.”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내가 눈물이 왈칵 났다.

그랬구나. 주원아, 네가 마음이 불편했구나. 엄마를 사랑하고 아빠도 사랑하는데 네가 어떨 수 없는 상황이라 무척 속상했구나. 그래서 가끔 학교도 격파하고 싶고 집도 싫고 그런 거였구나. 네 마음을 나름대로 표현한 거였는데. 괜찮아. 주원아. 속상한 거, 화나는 거, 마음에 꾹꾹 누르지 말고 말해도 괜찮아. 너는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주원이 말 때문이었다.

‘친아빠한테 미안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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