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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민 May 03. 2023

서른 해가 걸린 출생신고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헬렌 애덤스 켈러, 작가      



 몇 년 전 처음 호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움을 가진 채 스치듯 지나쳤다.      

 해당 청년은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주민등록번호 없이 사회보장번호를 부여받고 수급자로 책정되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속한 자치구는 전 동에 복지사무장이 배치되어 있지 않고 몇 개 거점 동에서 복지사무장 자리를 둬서 여러 동을 함께 챙겨 나가도록 하였다. 나는 동주민센터의 복지사무장으로 일하면서 거점지역을 뭉쳐 각동 복지담당자와 함께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위한 권역회의를 매월 개최하였다. 그러면서 각 동의 형편과 사례를 들었는데 당사자가 마침 권역 내 동에서 복지도우미로 일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레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개입을 하지 못한 것은 법적인 문제로 그 해결이 어렵다고 들은 것도 있었지만 타 동의 일이라 월권을 행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이미 성인이 된 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상황이라 그동안 미해결로 인한 사회복지사들의 무력감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사연을 접한 지 일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공무원 전보에 따라 그 복지도우미를 관리하던 복지직 공무원이 내가 있는 동으로 전보되어 오게 되었다. 전입에 따른 적응시간이 경과한 시점에 심부름을 온 무호적 청년을 보게 되면서 다시금 지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관련 사실을 듣던 중에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전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까를 생각해봤다.      


 첫 번째로는 부산지방변호사회에 무료변론을 신청했다.

 가정법원의 일이지만 상담하고 서류를 만드는 일에 도움을 받고자 관련자료를 모아 공문으로 접수했다. 한 달 정도의 심사 기간을 거쳐 지원 결정이 난다고 하였다.     


 두 번째로는 법원 공무원노동조합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내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이 함께 하고 있기에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실무적인 법률지원을 의뢰하였다.      


 지방변호사회에 서류를 접수하고 결정을 기다리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법원노조를 찾아가는 것은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당사자를 데리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법원노조에 간부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잠시 불러서 상세히 토로했다.


 앞서 호적업무를 봤었던 노조간부 한 분이 방향을 짚어주고 오류를 점검해 주었다.      

 전반적인 구도를 잡은 후 서류를 준비하여 당사자와 나, 그리고 기초수급 담당직원이 가정법원으로 출장을 갔다. 당사자가 일가창설 호적신청서를 작성하고 같이 간 나와 담당 공무원 두 명이 증인으로 사실확인을 위한 서명을 하면서 호적신청 서류를 완료하여 접수했다. 공무원 불친절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사법원 접수계 직원이 어찌나 친절한지, 법률적인 서류의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감탄하고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일정 기일이 지나고 호적은 만들어졌다.      


 근 서른 해 세월이 흐르고서 많은 시간의 고통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흘러갔다.     


 문제를 논의하던 즈음 ‘이번 도전이 실패하면 어쩌지?’ 하고 물으니 ‘뭐 또 그냥저냥 살아갈 겁니다. 오랜 동안 희망없이 살아왔기에 견딜 수 있습니다.’는 말을 들으면서 ‘참으로 힘들었던 시간이 삶에 대해 냉정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호적 등재, 출생신고 문제 해결로 청년은 이제 인생이 시작되었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취득해 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직종에 도전하며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시험을 준비하기에 급여가 적은 일에 종사하면서도 꿋꿋하게 몇년째 도전을 하고 있다.      


 모든 여건이 마련되어 취업에만 집중하는 여타 청년들과는 달리, 일과 취업준비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작년 시험에 실패한 모습을 보면서 마침 교회 지인을 통해 해당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연계해 주었다. 휴일 아침 시간에 상당히 먼 거리를 가서 최근 취업한 청년들을 만나 필요한 질문을 하고 취업 시험에서의 노하우와 최근 출제 경향을 듣고 왔다고 한다.

     

 청년세대 누구에게나 취업전선은 쉽지 않다. 홀홀단신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씩씩한 그대가 힘들었던 삶을 딛고 하루속히 반듯한 자리에 착지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부산법원공무원노동조합의 공무원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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