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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민 Jan 10. 2022

쓰러진 노숙인 행정입원, 원칙과 상황

 “단 한명의 사람도 버려짐은 없어야 하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오드리 헵번, 배우


사람이 잠을 자는 곳 중에 가장 낮은 위치는 길바닥일 것이다.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릴 8월 말 금요일 부산 원도심 쇼핑가의 시계점 앞에 여성 노숙인이 기대앉아 있었다. 당일 오전 바로 옆 도로변에 앉아 있다 차에 치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민원인의 연락을 받고 노숙인지원 담당자와 출장을 나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119에 신고하여 구급차가 여러 번 다녀갔다고 했다. 경찰도 나와 있었는데, 노숙인이 자신의 신원을 확인해 주지 않고 자신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지구대 대장에게 문의해 보니, 교통사고를 낸 차주의 인적사항과 보험 처리하겠다는 의사가 확인되었다. 노숙인을 설득하고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고 자꾸 잠을 자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일단 구급대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구급대원들에게 문의하니, 목숨이 당장 왔다 갔다 하는 응급환자가 아니기에 구급대로는 이동할 수 없다고 하였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그러면 왜 오셨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나의 사건에 벌써 4번 이상 오신 것 같은데.

 별다른 답은 없고 시간만 가니, 지구대원과 구급대원 사이 격한 고성이 오갔다. 평소 지구대장이 노숙인을 일일이 확인하고 챙겨가는 상황이었기에, 구급대의 행태가 더 못 마땅하게 느껴진 듯싶었다. 구급대원의 의견을 들어보니, 이런 대상자까지 챙기다보면 정작 응급환자에 대해 긴급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깝깝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노숙인 담당자와 나는 오던 길에 연락했던 노숙인지원센터의 직원들에게 다시 전화했다. 가장 전문가일 수 있고 눈 앞의 노숙인과 친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을 기다려 센터의 직원 두 분이 오셨다. 경찰과 공무원, 구급대원이 아무리 얘길 해도 되지 않던 소통이 이뤄지고 구급대에서 이동을 시키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노숙인지원센터 차량으로 센터에서 임시거처를 마련하기로 했다. 센터 담당자는 노숙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현재 교통사고로 거동이 곤란한 상황으로 판단하였다.

 후속조치로 이동하는 중에 긴급 행정입원을 위해 정신건강센터 직원에게 정신질환의 정도를 확인해서 의견을 달라하고 경찰에는 신원확인을 위해 10지문을 찍어 조회를 요청하였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노숙인 신원이 확인되었다. 관내 여관에서 집주인과 다투고 월세방을 나와 노숙을 하게 된 수급자였다. 2~3개월이 되었다고 하는데 주민센터에는 그 사이에 한두 번 들렀다고 하였다. 의료급여수급자였기에 입원은 좀 더 수월하게 되었고 몸의 불편은 자동차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빠르게 절차를 밟을 수 있겠다고 예상했다.


 정신건강센터의 사회복지사들이 노숙인지원센터로 가서 그간의 경과 상황을 공유하고 병원을 물색하다 타구의 중소병원과 입원 예약이 이뤄졌다. 타구에 소재한 노숙인지원센터에서 구급대를 불렀다. 환자를 태우고 해당 병원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던 중 정신질환에 특화된 병원에서 교통사고에 대해 수술이 필요한 지 확인을 요청하였다. 만약 수술을 해야 한다면 그것부터가 우선이라는 의견이었다. CT를 통해 정형외과 전문의가 내린 진단이 필요하였다.


 단순히 입원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정신병원으로 가던 중 돌발 상황이 벌어진 것을 들었다. 정신건강센터의 사회복지사들은 입원을 앞두고 구급차에 있으면서 부산지역의 대학병원들을 비롯한 대형병원을 샅샅이 알아봤다. 한 시간여를 전화로 물어봐도 골절로 인해 고열이 있는 상황의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부산과 창원지역까지 한 곳도 없었다.


 구청 직원 차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동 중에 멈춰서 궁리를 하게 되었다. 우호적으로 받아줄 규모의 병원이 없을까? 문득 떠오른 곳이 관내 신규 개원한 중급 이상의 병원이었다. 구청과도 병원 홍보로 협조적인 관계였기에 긴급하게 문의하였다. 승낙을 받고 원무과장의 안내로 빠르게 CT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노숙인의 옷에서 나는 심각한 냄새로 인해 병원 관계자들이 몸을 닦아내고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이불도 덮어 주었다. 의사의 진단은 고관절과 대퇴골에 골절이 각각 한 곳이 있는데 보존적 치료로 움직이지 않고 일정기간 있으면 뼈가 붙을 거라는 얘기였다.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서를 발급받아서 이제 정신병원으로 이송하면 되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에 정신건강센터 직원과 노숙인지원담당자를 먼저 병원으로 출발시켰다. 곧이어 환자 이송을 위해 119에 구급차량을 요청했다. 환자를 이동침대에 눕혀 1층으로 내려와서 차량을 기다리는데 10분 후 도착한 구급대원은 병원 간 이송은 구급차가 해주지 않는다면서 서비스를 못해주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러면 왜 왔느냐 하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왜 못해주는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 왔다는 것이었다.


 솟구치는 분노로 119에 항의하였다. 평소 소방서 직원들이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공무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도 힘닿는 만큼 지원하였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면서 부당함을 하나하나 지적하였다. 당초 대학병원으로 이송해야 하지만 받아주지 않아 중급병원으로 왔기에 다음 이송도 구급대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항변하였다.


 1층 주차장 앞 진입로 야외 공간에서 환자와 있으면서 129를 요청해 봤다. 부르면 10만원이상의 요금은 내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이미 소소하게 병원에서 진단서 등 약간의 부담을 한 상태이다. 129도 앞으로 30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려왔다. 보건소의 응급차량을 과사무실과 보건소에 직접 연락하여 확인해 보았다. 그마저도 지금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잘 아는 운전직 공무원을 통해 스타렉스 차량이라도 알아보려 했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방법 없음에 노숙인과 내가 버려진 느낌을 받으며 절망에 빠져갔다. 아까 119 항의 이후 걸려왔던 소방서의 전화가 몇 차례 있었지만 받지 않았는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워진 나의 멘탈은 더 이상 달리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다시 걸려온 소방서의 전화를 받았고 구급차를 한 대 보내준다는 말을 들었다.

 타 소방서에서 차출된 구급대는 지리를 몰라 다소 지체되어 도착한 후 왜 이 건을 자신들이 처리해야하는지 물었다. 탈진되어 가는 난 건조하게 일문일답하듯 대응하였다. 너무 늦어버린 시각이었기에 계속적으로 채근하고 확인하는 정신건강센터 직원들의 전화를 이젠 그래도 응할 수 있었다. 난생 구급차를 타고 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사이렌을 울리고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18시 마감 병원 일정이었지만 병원 원무과 직원들과 의사선생님들이 기다려주었다. 19시가 되어 입원을 완료하고 구청으로 돌아왔다.


 원칙과 절차는 중요하다. 그러나 상황을 고려치 않는 행정은 사람이 할 도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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