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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식으로, 우리의 걸음으로

'나'에서 '우리'로

by 신선한량

교감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교감은 타인 또는 환경과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상태를 말한다.

즉 상대를 전제로 한 감정 상태를 말한다.

감정과 생각이 충만해진다는 점에서 교감은 ‘벅차오름’, ‘뭉클함’ 등의 단어와도 일맥상통한다.

벅차오름과 교감은 나와 상대의 유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벅차오름은 개인의 내적 충만감을 나타내는 감정이고, 교감은 상대와의 연결성을 말한다. 또한 벅차오름은 일시적이지만 교감은 지속 가능하다.


한동안 난 자신만을 바라봤다. 나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고 했다.

중년 사춘기를 거치며 자기 발견을 통해 인생의 소명을 찾아가는 중이다.

누가 뭐래도 난 나의 길을 가겠다는 나름 숭고한 목표가 있었다.

그게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추구하는 인생관과 가치관의 언저리에

삶의 목적과 소명이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나는 국립공원 레인저다. 수년 동안 몇 개 과를 전전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는 자연환경 해설사들과

국립공원 현장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쉼과 여가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탐방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있다.

여러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다른 업무를 해오다가 나의 기질과 성향을 발휘할 업무는

지금의 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문제는 늘 연말 근무 평점의 시기에 만년 계장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성의 계기는 사무소 근무 성적 평가 이후 맞닥뜨린 사무소장의 질문이었다.

전년도와 같은 중하위 점수를 받았다.


"현수 계장은 기획은 잘하는데 주변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거 같아"
"탐방 담당자로 잘 맞지 않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어서"
"네가 하는 일은 화려한 업무라서 소장을 돋보이게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그 말은 마치 '너에게 다시 탐방 업무를 맡겨야 하는 이유가 뭐니?'

'앞으로 사람들과 관계는 어떻게 해나갈 작정이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1년 전 새로 부임한 소장은 만년 계장에 머물던 나를 구원해 주기로 했다.

공원 순찰 근무를 하면서 같이 찍은 사진을 공단본부 임원에게 보내는가 하면 행사차 내려온 VIP에게 나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직장생활은 일만 잘한다고 승진시켜 주는 곳이 아니다.

애씀과 고생한 흔적을 타 동료들이 인정해 주고, 남이 인정할 만한 평판과 이미지도 쌓아 올려야 한다.

소장의 질문은 나의 의미와 방식으로 해석하고 필요하면 상대를 설득하고 싶었다.


그의 말은 며칠 동안 내 몸을 떠돌아다녔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가 하면 화장실을 가거나

차를 운전하는 도중에도 불쑥 올라왔다.

내 무의식은 그의 말을 받아칠 그래서 나를 보호해 줄 뭔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질문은 잠시 밀쳐두었던 내안의 화두 중 하나를 캐물었다. 본질을 바라봐야 했다.

그동안 번번이 관계 앞에서 허물어졌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10명의 자연환경 해설사와 일하다 보니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사무소의 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야 했다.

생각보다 많은 관심과 에너지가 필요 했다.

기획도 마찬가지다. 계획을 짜고 예산을 받아오고 다른 과와 동료들의 협조를 구하기도 하고

상사들의 승낙을 얻기까지 지난한 절차를 거친다.


겨울에 방송사에서 촬영의뢰가 들어오는 날이면 해설사들은 서로 눈치를 본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형평성을 위해 순번제로 돌렸더니 일부 해설사는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것도 아니고 담당자가 독단적으로 처리한 거라며 해설사 분위기를 해친다”는 말을 면전에서 듣기도 했다.

조직의 요구안을 내밀면 그걸 우리가 꼭 해야 하냐며 방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들의 처지와 형편을 내뱉기만 하고 담당자와 사무소의 상황은 그다음인 듯 보였다.

그런 불안감이 차올라 한때 전화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어디에라도 풀어놔야 해서 상담사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때론 아내에게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나와 결이 맞지 않거나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민감한 성향을 보인 나는 갈등에 예민했다.

그 와중에 이슈가 터지고 갈등이 생기거나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 나는 표류하기도 했다.

날카롭고 뾰족한 말들에 난 유난히 민감했다. 혹시라도 찔릴까 봐 조심했고 더 소심해졌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내가 살 길이라 생각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요구와 해설사들을 달래고 어르면서 이끌어야 하는 고단함 사이에서 나는 납작해지기 일쑤였다. 그들의 눈에 나는 무능하거나 유약한 사람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권위적이고 기회적인 행정과장, 얼렁뚱땅 하지 않고 원칙주의자인 보전 과장 일머리를 타지 못하고

후배들과 농담 따먹기를 해대는 재난 안전과장이 모두 사무소의 여론을 쥐고 있는 이들이다.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사회적인 가면을 끼고 사람들을 대할 수는 없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내 그림자를 투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고 외면했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기회를 노리고

사내 정치를 하고 원칙을 내세우고 후배들과 다정한 농담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몇 주 전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공단본부 과장으로 있던 그녀는 출장 당일 점심을 같이하자면서 먼저 연락을 해왔다. 가끔 안부는 주고받지만, 사적으로 친하지는 않았다. 점심을 같이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승진 기회를 잡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다. 공단본부 내에서 불리한 여건에 있던 그녀의 입장을 들어주기도 했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 나를 챙겨준 그녀가 고마워 감사의 카카오톡을 보냈더니 생각지도 못한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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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계장님~~

계장님은 제가 가장 애정하는 분 중 한 분이세요!!

올 해는 살짝 아쉽고 섭섭했지만, 내년엔 분명 대박 나실겁니다!!

항상 큰 힘 되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를 알아주는 듯 느껴졌다.

마치 "내가 당신이 그동안 억울한 것도 있고 아쉬운 것도 있는 걸 어느정도 헤아리고 있으니

기운 내셔라 앞으로는 잘될 거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위로와 교감은 상대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작지만 소중한 위안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나를 생각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아직 내게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기대와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종종 직장 동료나 선후배들과 교감하는 나를 상상한다. 한참 지나서야 깨달았다.

줄곧 고독의 길을 고수 했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을 받고 나서야 내심 응원과 지지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소장의 질문을 지난 몇주 동안 품고 있었더니 나름의 해답을 얻은 기분이다.

사람들과 얼마만큼의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할지 여전히 쉽지 않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게 순리대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었다.

김치가 익어가듯이 내게도 묵히는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소장의 질문과 그녀의 말을 접하면서 내게 조력자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나를 지지하거나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꼭 승진을 위해서라기 보다 일상의 오르막길을 동행해 줄 그 한 사람을 말이다. 혼자 깨치는 통찰의 희열도 좋지만, 관계 속에서 함께하는 위로와 위안도 소중했다.


처음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답게 사무소에서 성과를 내고 싶었다.

세상과 조직의 방식으로 어필하고 싶지 않았다. 휴일 근무라는 것을 어떻게든 티를 내고 과장들이 궁금해하는 일에 보란 듯이 나서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평판 관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묵묵히 뒤에서 내 일을 하면 그만이지 싶었다.

그러면서 하나 놓친 게 내 옆의 동료들과 선후배를 미처 보지 못했다.

그동안 먼저 다가가기보다 내가 상처받은 상처를 보듬는 데 집중하고 내 처지와 가족을 보살피는데 몰두했다. 어느 날 상사들로부터 관심받는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심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지지받고 싶은 마음이 내게도 있었나 보다.

하지만 꼭 승진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다가가는 게 아니라 교감하고 일상이 조금 더 풍성해지는 질적으로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기 위해서 움직이련다.

교감은 내게 조금은 낯설다. 이제는 나만의 방식에 그 단어를 더해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려 한다.

여전히 나는 혼자 걸어간다. 스스로 앞장서고 길을 내며 어딘가에 있을 나의 소명을 향해 간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나와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작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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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높게 쌓아 올린 담장 너머로 작은 꽃씨가 떨어졌다. 어느 순간 싹을 틔워가며 내 고독의 틈새를 메워가기 시작한다. 교감은 그런 것이다. 혼자만의 충만함을 넘어서 서로를 물들이는 연분홍의 시간을 이제 나는 담장 너머로 손을 내밀어 꽃을 심는다. 함께 피어날 풍경을 기다리며...

이제는 내 속도로 걷지 않으려 한다. 함께 걷는 걸음 속에서 새로운 리듬을 찾아간다.

혼자라면 몰랐을 더 풍성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되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성장의 길이다.

그렇게 나와 세상 그리고 우리의 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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