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밈 Apr 09. 2019

살아도 죽은 시간

살아가는 시간과 살아지는 시간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 아주 평범한 직장인을 예로 들어보자.


아침 9시
10분 전 출근하여 사무실에 앉아있다. 회사 내부망을 열어 '할 일'을 체크한다.

오전 12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혼자 조용히 나만의 속도에 맞춰 밥을 먹고 싶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직장 동료, 선배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오후 1시
'빨리 퇴근하고 싶다' 생각하며 다시 일을 시작한다.
문서를 작성하고 결재를 올리고, 각종 전화에 시달린다.

마침내 오후 6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한다.

이건 아주 Rough 하고 군더더기 없는 직장인 시간표다.


이때 하루 24시간 중,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9시간(점심시간 1시간 포함)과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고

남은 시간은, 단 7시간.


우리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하루 7시간뿐.


월화수목금: 7시간 x 5일 =35시간
토일: 16시간 x 2일 =32시간(잠자는 시간 빼고)


일주일 동안 우리의 순수 의지로 사는 시간은 67시간. 한 달이면 268시간.

이를 24시간 하루로 다시 환산하면 한 달에 약 11일.


즉, 1년에 우리는 약 132일 정도 우리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

회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며 오로지 자신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야근, 주말출근 일절 없다는 전제하에!)


누군가는 그 시간에 쇼핑, 힙한 카페나 가게 찾아다니기 등 소비성 활동을 주로 하거나 봉사활동, 환경운동 등 사회적 의미가 있는 활동을 한다. 또는 친구들과 맥주 한 잔, 연인과 데이트, 가족과 식사 등을 하며 사람들과 소소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외국어 공부, 이직 준비, 야간 대학원 공부를 하며 자기 계발에 힘쓸 수도 있다.


이도 아니면 혼자 영화보기, 강변에서 음악 듣기, 자전거 타기, 여행 가기, 강아지와 산책, 소파에 누워 TV보기 등을 하며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반면 이 시간에도 범죄, 폭력, 사기 등 각종 사건사고들은 일어난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온전한 시간에도 그러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1년간 우리에게 온전히 주어진 132일. 이 시간만이 우리 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의 남은 시간 233일은 그냥 흘려보내도 되는 시간인가? 내 인생에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인가? 이 시간은 우리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시간인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그냥 '이 시간만 지나가면 괜찮겠지' 하고 흘려보내기에 내 인생에서 너무 소중한 아까운 시간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무수히 많은 직장인들은 또 그렇지 않다. 회사에서 힘든 일을 겪게 되더라도 다 인내하고 또 다른 오늘을 살아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들을 너무 수동적으로, 의욕 없이 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회사에서는 최대한 힘을 빼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야지! 시간아 빨리 가라!'하고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편이 속은 편하다. 그리고 내가 힘주어 생각하고 행동해야 되는 일들은 '퇴근하고 해야지, 주말이 있으니까'라는 생각에 모두 다 미루게 된다. 오지 않은 시간들에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내맡긴다.


그런데 막상 내 소중한 132일 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일들을 잘 실천하였는가? 내 뜻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과연 어떻게 보냈는가? 회사에서 수동적으로 일해왔던 내가 타성에 젖어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 해야 잘 보내는지 잊어버린 건 아닐까. 머리에 힘쓰고, 몸에 힘주는 것이 귀찮아서 오늘도, 내일도 침대 위에서 사부작 거리고만 있지 않은가.


우리 회사에 휴가가 있어도, 연차가 쌓여도 그 시간을 어찌할 바 몰라 사무실에 있는 게 편하다며 좀비처럼 일하는 직원분들이 있다. 대부분 결혼 후 잔소리가 늘어난 아내와 다 큰 자식들을 피해 자기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잘 모르는 중년 아저씨들의 모습이었다.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 수동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계속해서 이어져, 내 시간 또한 수동적으로만 보내게 되면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사회가 정체되고 발전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게 없다.


그렇다고 퇴근 후, 주말에 갑자기 으쌰 으쌰 하고 안 하던 행동들을 할 수도 없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려면, 내 삶을 즐기고 다른 이들까지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직'을 위하여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이런 문항을 보게 된다.

Q.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인생에서 그 가치를 실현한 사례를 작성해주십시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나는 지금 무의식적으로 일을 하고 로봇처럼 인간관계를 맺고 시체처럼 퇴근 후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내가 '가치'를 실현하며 살고 있었던가.

그때를 기억해내려면 저 깊숙이 파묻혀있던 언제였는지도 모를 기억을 헤집어 찾아내야만 했다.


스스로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과연 어려운 것인가?

누군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왜 나는 못하고 있는가?


반문에 반문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다 보면 단 하나의 대답이 나온다.


이건 내 용기의 문제인가. 아니면 의지의 문제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벼랑 끝 선택한 공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