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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밈 Sep 04. 2021

25. 분노의 신혼집 매매기

영끌 매수하려다 영혼까지 탈탈 털렸습니다

2021년 1월에 개봉한 디즈니 영화 '소울'을 보면 상영 전에 '토끼굴'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짧게 나온다.


토끼 한 마리가 삽을 들고 자기 방을 마련하기 위해 굴을 판다. 이곳저곳 열심히 파보지만 땅 밑에는 두더지, 쥐 등 다른 동물들이 이미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단지 몸을 뉘일 작은 공간이 필요할 뿐인데, 땅 속은 이미 저마다의 멋진 공간으로 가득 차 토끼를 위한 곳은 없다.


토끼는 이를 악물고 더 깊은 지하로 굴을 파내려 간다. 그러다 지하수가 샘솟는 부분을 삽으로 잘못 건드린다. 물은 콸콸 솟구쳐 나와 파도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버린다. 토끼는 허겁지겁 다른 동물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 순간 자신의 커다란 귀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먹이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는데 덩달아 울컥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최근 두어 달, 신혼집 마련을 위해 부동산을 알아보다 폭등한 집값에 무력감을 느꼈었는데, 저 토끼가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내 집 마련은 이렇게나 힘든데 이 많은 아파트들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멋진 공간을 잘도 만들어 속속들이 살고 있었다. 나 혼자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이 작은 토끼조차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위로가 되면서도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극사실주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았다.






올해 결혼을 하려면 신혼집을 구해야 했다.


신혼집을 마련하려면 크게 네 가지 방안이 있었다. 첫째, 전세를 전전하다 아파트 청약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제 실거주할 사람들만 청약을 하도록 제재를 가하고 무분별한 분양권 투기를 없애겠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P를 주고서라도 새 아파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 암담하다. 그리고 투기꾼들과 그들을 잡는다는 정부 때문에 서민들이 분양권 전매를 통해서 자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또 하나 사라졌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산 증식이 죄라니.


더군다나 결혼 연령대가 높아진 지금, 일반 회사원 부부 합산 소득 기준은 신혼부부 특공 소득 기준을 조금 초과할 수도 있다. 그럼 소득 조건을 간신히 맞추는 기간 동안, 청약 넣으면 100% 당첨시켜주는가? 당첨 보증만 된다면 5년이고 10년이고 전세를 살아도 상관없다. 그런데 수십 대,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서 신혼부부 특공에 당첨되기란 쉽지 않다. 당첨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흘러간 시간만큼 높아진 집값과 전셋값을 어떻게 감당할 지도 불투명하다. 그때가 돼서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으리. 아무도 '토끼굴'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둘째, 대출 없이 예산에 맞는 집을 매매하는 것이다. 네이버 부동산 어플에 오직 가능한 예산 한도만으로 필터를 걸어보면 오피스텔 혹은 작은 평수의 한 동짜리 아파트가 나온다. 작년 연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이유도 크다. 돈 없으면 그렇게라도 살아야 된다고? 본인들은 그렇게 살기 싫으면서, 본인들 자식은 대단지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길 바라면서 남들은 그렇게 살아도 되나? '내로남불'인 사람들의 말은 책임감 없이 내뱉는 말이기 때문에 귀담아들을 필요도 없다. 아이가 언제 생길지 모르는 불분명한 상황에서 혼자 살기에 딱 좋은 그런 공간에 신혼집을 마련할 수는 없다.


셋째, 갭 투자로 괜찮은 아파트를 매매하고 전세에 한 동안 사는 것이다. 실거주가 아니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있는 꽤 괜찮은 아파트여야 하고 실제로 거주할 집은 기준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전세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일명 몸테크. 하지만 현금과 신용대출 금액을 끌어모아도 갭 투자를 위한 차액 대금에 한참 모자란다. 매매대금을 어찌어찌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이후엔 전세자금이 없다.


마지막으로, 든 영혼을 끌어모아 그럭저럭 지낼만한 집을 사는 방법이 있다. 비록 대출이자에 허덕이게 되겠지만 소중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 그런데 2020년 말,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괜찮은 아파트를 내 손의 돈 몇 푼으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불과 몇 개월 전  지방의 3억이던 아파트가 4억대는 훌쩍 건너뛰고 바로 5억대가 돼버린 지금. 뉴스 기사에서나 보던 2030 세대 '영끌 매수'가 과연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였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 적령기' 사람들, 그들은 코로나로 인해 신혼여행도 따뜻한 섬나라로 가지 못하고 집을 살 때조차 폭등한 집값을 '상투'해야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집값 잡는다고 조정지역이다 뭐다 온갖 대출 규제를 만들어 놓은 무능한 정부가 더 원망스러웠다.





남자친구와 나는 이것저것 알아보다 처음에는 전매 가능한 마지막 분양권을 매수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계약 당일, 공인중개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매도자가 계약금을 수표로 요구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매도자가 신용불량자여서 큰 금액이 통장에 찍히면 안 된다고 하였다.


부동산 계약도 처음인데, 이런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다니! 적은 금액이 오고 가는 것도 아닌데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는 수표로 계약금을 주려니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하지만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언제 또 이 분양권을 살 수 있으려나 싶었다. 결국 은행에서 1억 원을 수표로 찾았다. 은행 직원도 갑자기 큰돈을 몽땅 인출해가니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듯 꼬치꼬치 상황을 물어보았고 조심하라고 우려를 표하였다.


그때 남자친구와 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 앞에 주차되어 있던 까만 벤츠 차량이 떠올랐다. 사무실에 매도인은 보이지 않았고 매도인과 함께 왔다던 그 벤츠 차량에서는 조폭처럼 보이는 남자가 내렸었다. 본인은 신용불량자인데 번지르르한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지인과 굳이 함께 온다고? 우리는 매도인이 신용불량자니 그 남자는 바로 채권자고, 같이 와서 바로 계약금을 가져가려고 하는 건가 하며 별별 의심을 다 했다. 신용불량자라고 해서 인성이 나쁘고 부도덕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부린이들의 생애 첫 거래인만큼 모든 안 좋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마침내 공인중개사와 함께 분양사무소에 가서 전매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할 때, 매도인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였다. 30대 초반의 여자였고 특별공급으로 분양권에 당첨되었다고 하였다. 벌써 아이가 무려 5명이라고 하였다. 불현듯 분양권 당첨 사기 관련 뉴스가 생각났다. 부정으로 당첨된 분양권을 전매로 사도 매수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보던데. 조금 수상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 애가 5명일 수도 있지'하고 애써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사람이 중도금을 1차, 2차 모두 연체한 상황이어서, 분양사무소에 미납된 중도금을 바로 입금을 해야 정상적으로 분양권 매수가 가능하였다. 이 사실을 공인중개사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니! 당일 아침 재차 문의했을 때에도 중도금 대출 승계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중개사였다. 그런데 우리는 현금으로 돈을 가져오라는 말에 계좌의 모든 돈을 수표 1장으로 들고 간 상황이었고, 분양사무소에서는 계좌이체로만 중도금 납입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시계를 보니 은행이 영업점 문을 닫는 4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계약은 불발되었다.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한 분양사무소에서 남자친구와 나는 거의 패닉 상태였고 그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공인중개사는 심지어, 계약서상 숫자가 잘못되었다며 말도 없이 홀연히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래도 자격증을 걸고 하는 '중개사'인데 전문적인 상담 능력과 업무처리 능력을 기대한 우리가 잘못이었다. 그 사람은 그저 '마담뚜' 역할을 할 뿐, 공인중개사로서의 능력은 빵점인 아줌마였다. 만약 계약을 했으면 이런 최악의 공인중개사에게 몇백만 원의 중개수수료를 지불했어야 했다니...


심지어 계약이 취소되고 분양사무소에서 다시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에, 매도인과 같이 온 다른 공인중개사가 우리에게 한 말이 더 가관이었다.

"그 수표 1억 원 저한테 맡기고 가세요. 그럼 다음 계약일에 분양권 넘겨드릴게요."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방구인지! 당신 같으면 계약서도 작성 못했는데, 1억 원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고 집에 갈 건가? 정말 어이없었다. 여기 또 무늬만 공인중개사인 최악의 마담뚜 아줌마가 있구나.


직장에 연차까지 쓰고 다른 지역으로 버스 타고 간 거였는데, 계약은 커녕 영혼까지 털리고 돌아와야 했다. 이 날 배운 교훈은, '부동산 계약은 절대 성급하게 하지 않기', '수상한 느낌이 들면 과감히 포기하기', '공인중개사를 100%로 믿지 말기'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신혼집 매매는 많은 깨달음과 분노를 얻게 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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