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_한강
한 번은 눈으로 문자로 읽었다
한 번은 입술로 말로 읽었다
한 번은 가슴으로 모국어로 읽었다
어떤 말은 가슴에 걸렸고
어떤 말은 주저 없이 망각과 공허의 강으로 흘렀다
화선지에 먹물 한 점만 찍고 싶었던 건 아닐까
짙고 흐린 번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차라리 침묵하고 싶진 않았을까
말의 공백과 침묵을
나는 온전히 사유할 수 있을까
암흑 같은 말들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육체의 베일에 가려진 시인의 영혼을
잠시 들여다볼 수 있다면
엉킨 실타래 같을 생각과 혼자만의 고독을
우주의 심연 같을
칠흑의 동공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바라보는 피사체들과 눈에 고인 이야기들을
시가 소설이 되고 소설이 시가 되는
유연함을 일관성의 고통을
나는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 ......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몇 개의 이야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