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소설전집

이상

by sinwolrang

한 여름 빨랫줄에 널려있는 무명천 마냥 바스락 마른 흰 구름들만 지평선에 매달려 이리저리 몰려다닐 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더니, 장마랄 것도 없이 불쑥 폭염이 찾아왔다.


요즘은 글을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글의 소재가 고갈된 것은 아니지만, 여름엔 머리를 쥐어짜 내는 글쓰기가 힘이 들기도 하거니와 글쓰기보단 체내 에너지 소비가 덜한 읽기(독서)로의 전환이 생존에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젠 지구 온난화로 여름은 나는 게 아닌 생존의 문제가 돼버렸으니...!


'문학의 바다에서 나를 만났다.' 세 번째 작품은 이상 작가의 소설전집이다.

이상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자전적 삶을 배경으로 쓰여서인지 대부분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일색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자체가 암울하고 희망이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맥락이 없거나 해석이 난해한 글을 읽다 보면 성경의 레위기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내를 갖고 글을 읽다 보면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상의 이상만의 세계를 얼핏 들여다볼 수는 있다. 이상의 영혼에 깃든, 생각에 고인, 마음에 쌓인 것들이 점점이 글들 속에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글들로 쌓아 올린 담장 그늘진 곳, 그곳에 존재의 불안과 사랑에의 갈망, 시든 키 작은 채송화 같은 나를 만났다.


[12월 12일]

결국 허무주의...!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통해 가혹한 운명 앞에 선 인간의 고통과 연약함을 다룬 서사이다. 화자는 자신을 둘러싼 불행과 고통들이 모두 자신의 운명적 결함으로 인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며 극단적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에게 있어 삶의 부정도 죽음의 긍정도 없이 이 무서운 기록을 남기는 것만이 운명에 맛 서는 유일한 칼이었다.


한때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자 거센 운명에 의해 부정되려는 삶에 저항한다. 하지만 사할린에서 입은 부상으로 절뚝발이가 되면서 운명은 그를 다시 한번 가혹한 절망으로 절벽으로 밀어버린다.

계속되는 자살 충동을 겪으며 신을 향한 부정과 운명에 대한 저주 속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위태롭게 살아간다.


신 앞에 그런 자신의 삶은 무죄라고 항변하지만 결국 스스를 모든 불운이 자기 죄의 인과임을 스스로 규정하곤 12월 12일 한겨울 차고 메마른 창공 아래 비극적 죽음으로 삶을 종식시킨다. 또 다른 비극적 운명의 씨앗을 세상에 남겨둔 채....!


"인간은 실로 인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얼마나 애를 썼나, 하늘도 쌓아보고 지옥도 파보았다. 그리고 신도 조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땅 이외에 그들의 발 하나를 세울 만한 곳을 찾아내지 못하였고 사람 이외에 그들의 반려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들은 땅 위와 사람들의 얼굴들을 번갈아 바라다보았다. 그러고는 결국 길게 한숨 쉬었다."[본문]


[지도의 암실]

읽다 잠들다...!

정말 이 소설을 읽다 졸았을 정도로 의식으로 시작해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화자가 잠을 자려 누워 뒤척이며 시공간을 초월한 상념의 편린들을 흩뿌린 후 다시 "에이~ 잠이나 자야겠다."라고 독백하는 듯 마무리되는 글인 것만 같다. 우리가 흔히 잠이 오지 않을 때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세어보는 것 마냥~

이 소설은 마치 의식의 저편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툭툭 쌓아 올린 초현실적 조형물처럼 보인다.

지도=세상?, 암실=비밀, 현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그래서 모른다.


[휴업과 사정]

끝까지 자기 연민...!

보산이라는 인물이 겪게 되는 심리적 파동을 재미있게 묘사한 단편소설.

우유부단한 성격의 인물이 이웃과의 갈등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다. 유치한 편지를 통한 소심한 복수마저 포기하고, 그런 자신을 끝까지 괜찮은 사람으로 우월한 사람으로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며 보산의 그림자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내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주인공의 낮과 밤이 바뀐 삶을 통해 이상의 생활 패턴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지팡이 역사(轢死)]

시트콤 한 편...!

이상과 친구 S가 여행을 하며 격은 작은 에피소드를 담은 단편소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해 보이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는 듯 생생하게 빛난다. 이상도 예쁜 여자와 낭만을 좋아했던 사람인 것 같다.


[지주회시(鼅鼄會豕)]

인간 탈을 쓴 거미들...!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사라진 세상의 음울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보여주는 소설.

단 한 줄기 희망의 빛조차 없는 절망의 세상과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추하고 모순적인 삶의 모습은 우리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 하게 보여주고 있다.


[날개]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지주회시의 후속 편인 것처럼 역시 맥 빠지고 우울한 분위기의 소설.

암울한 현실 속 이상의 자조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 보인다.

무력감과 배신감에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지만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자각된 자아는 현실의 암울함을 벗어나 인생의 새로운 희망과 목표를 되찾아가는 패러독스적 서사.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봉별기(逢別記)]

그것도 사랑...!

금홍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

암울한 세상에서의 암울한 이야기...!

하지만, 그것도 사랑이었다.


[동해(童骸)]

복수의 의지를 삶의 의지로 바꾸다.

임을 두고 친구와 삼각관계에 빠진 세 사람의 치정을 다른 소설.

정조관념에 구속받지 않는 신여성과 두 남자의 갈등 속에 태동한 굴욕감과 복수심은 자기 연민과 삶의 의지를 되살린다.


[황소와 도깨비]

연민의 대상을 가리지 말라...!

공경에 처한 모든 것을 그것이 도깨비와 귀신일지라도 불쌍이 여김이 어찌 마땅치 아니하랴.


[공포의 기록]

절망의 기록...!

병마와 연인의 배신, 세상으로부터 도피, 자살 충동....!

그는 결국 자신을 파멸과 후회의 길로 내몰아 버릴 것인지...!


[종생기(終生記)]

여자여, 진정 흔들리는 갈대이던가...!

시시로 찾아드는 죽음의 예감과 사그라져가는 삶에 한줄기 희망과 같았던 연인과의 재회, 그리고 여자의 배신, 삶의 끝에선 자신을 향한 저주...!


[환시기(幻視記)]

비뚤어진 욕망...!

순영을 향한 욕망이 빚어낸 환시(아내의 얼굴이 삐뚤어 보이는)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지만 결국 아내가 아닌 자기 자신이 비뚤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다.


[실화(失花)]

비밀을 잃어버린...!

비루한 자신의 처지를 동정해 받은 백국 한 송이를 잃어버리고 그는 또 절망에 빠져든다. 짙은 화장에 가려진 연인의 비밀, 그 비밀조차 없는 민낯에 그는 괴롭다. 여전히 그의 마음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멀리 있다.


[단발(斷髮)]

고독한 소녀...!

스스로 머리를 자른 소녀의 쓸쓸함과 고독, 그녀의 고독함보단 단발의 그녀의 모습 자체가 더 마음에 다가온 유혹이 된다.


[김유정]

거장들의 추태...!

이상의 벗 들인 박태원, 정지용, 김유정이 취중에 벌이는 다툼을 위트 있게 묘사하고 있다.


[불행한 계승]

이어지는 불행...!

배신과 폐배감으로 절망에 이른, 진정한 사랑만이 그를 구원해 낼 수 있으련만~ 여전히 그는 죽음의 그림자와 동거하며 살아간다. 고독하고 외로운 한 인간의 우울함이 짖게 베여있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