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나는 나아갔다.
요즘 다시 사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려 애쓰고 있지만, 아직은 마음이 천천히 움직인다.
긴 침묵의 시간을 채우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
캠프가 있던 아침,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겨울 특유의 냉기가 피부에 닿으며
오늘이 이전의 어느 날과는 다르리라는 예감을 조용히 남겼다.
엄마가 운전석에 앉았고, 언니는 뒷좌석에 탔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시트벨트를 천천히 매었다.
그 순간, 이유 없이 마음이 낯설어졌다.
상황이 낯선 게 아니라 내가 향하는 방향이 낯설었던 것에 더 가까웠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익숙한 풍경들이 서서히 뒤로 밀려났다.
늘 지나던 간판들,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 등굣길 학생들, 신호등 아래 엷게 쌓인 눈.
풍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길을 지나가는 나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차 안은 고요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조차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희미했다.
엄마도, 언니도 말을 아꼈고, 그 침묵은 어색하다기보다 어딘가 배려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조용함 안에서 나는 숨을 조금 더 고를 수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정말 가고 싶은 걸까?
이 선택이 나를 구할 수 있을까?
혹은 또 다른 상처가 되는 건 아닐까?
질문들은 줄줄이 따라붙었고, 그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버텨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조용히 부딪혔다. 그 충돌 사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하나가 떠올랐다. 두려움과 희미한 기대 둘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낯선 캠프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한동안 잠잠했던 심장이 다시 크게 뛰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땀이 차오르고, 숨이 조금 가빠졌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차가 멈추자 엄마가 짧게 말했다.
“잘 다녀와.”
그 말은 응원도, 위로도, 명령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해 주는 문장이었다.
차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한순간에 폐 깊숙이 들어왔다. 몸은 움찔했지만, 발끝은 앞으로 움직였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낮고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 말이 다짐인지, 기도인지, 혹은 스스로를 설득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문장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마음 깊숙이 품은 채
천천히 캠프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두려움과 기대를 함께 안고 아주 조심스럽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준 가족들을 위해서 용기를 내서 문을 열고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