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

by D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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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무언가를 시도했다가도 '계속 해왔던 것'과 '새로운 것'의 선택지 중에서 전자를 선택하곤 한다. 새로운 것이 좋은 이유는 애써 잊은 채 '계속 해왔던 것'이 주는 안정감을 합리화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정말 꾸준히 해오는 것이 있다. 바로 '축구' 다. 어렸을 때는 관심받는 것이 좋아서. 조금 더 커서는 축구를 하며 친구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바로 어제는 대학교 때 했던 축구동아리의 연례행사인 '홈커밍데이'가 있던 날이었다. 새내기부터 동아리 창단 멤버까지 모두 모여 축구도 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나름의 축제 같은 날이다.


축제 같은 날이지만 한 순간 진지 해지는 시간이 있다. 바로 이 날의 메인이벤트인 '재학생 팀'과 '졸업생 팀' 이 경기를 할 때이다. 마음만은 박지성의 폐활량과 손흥민의 발재간을 갖춘 만능 플레이어지만 몸이 영 따라주지 않는다.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움직임을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의 그 씁쓸함이란.


20대를 지나고 나이를 먹으며 우리는 어떤 계기로든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느끼게 된다.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기억력이 떨어진다거나, 전에 없던 피곤함으로 무기력해진다거나..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해야 할 일을 못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이만한 악순환이 없다.


가끔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얘기를 해줄 때가 있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


하지만 잊고 있었다. 이건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전에 없는 것들을 느끼며 그냥 나이를 먹었다고 흘려보내기 쉽지만, 이 중에는 분명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꾸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이 두 가지는 구분 없이 그저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떻게 구분할까? 그건 '나의 의지'. 쉽게 말하면 내가 바꾸고 싶은지, 순응하고 싶은지의 차이일 뿐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네'라고 생각한 축구 또한 어제 경기의 MOM(Man Of the Match) 은 나보다도 3살이 많은 '꾸준히 축구를 해온' 선배님이었다.


그래서 나는 왕년의(?) 축구실력을 되찾기 위해 꾸준히 축구를 할 수 있는 동호회에 가입했다. 이건 내가 바꾸고 싶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그대로 앉아서 받아들이지 말자. 그러기엔 선물과 같은 현재가 너무 아깝고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잊지 말자. 오늘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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