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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별 Apr 03. 2016

1년

2015년 4월 3일을 애도하며.




이슬비처럼 드문드문 잊지 않고 내려주던 눈물은 닿지 못할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진심이었습니다. 거짓이었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사실 여부를 증명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늘 젖어 있던 마음 하나는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언제나 사랑만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만. 그저 사랑만 말입니다.


끊임없던 눈물도 말라 가뭄이 찾아 올 즈음에 당신을 만났습니다. 봄은 늘 상실이었다 기록하던 일기장의 칸이 아예 비어버렸습니다. 상실인지, 이득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그 어떠한 말도 쓸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사실 나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당신을 만난 일이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부터 시작해서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당신의 진심이 순간순간 어떻게 변해갔는지까지. 아주 많은 의문은 아직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잊을 만하면 찾아듭니다. 텅 빈 대답을 제출하기엔 멋쩍으니 결국 '모르겠다'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장황한 글을 써놓곤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일쑤입니다.


그래요, 이것이 지금 나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사실 당신의 세세한 것들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조각조각 찰나의 순간들이 내 마음에 박혀 여전히 빛나고 있고, 나는 통증을 느낄 때마다 수도 없이 순간의 조각들을 마르고 닳도록 바라봅니다. 참으로 어여쁩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기에 아마 더욱 아름답겠지만, 그 사실을 배제해도 잠깐의 교점에 머물렀던 우리, 정말로 눈부셨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머리를 기대곤 하던 어깨, 맞대어 보고는 너무도 크기 차이가 나 서로 깜짝 놀라던 서로의 손, 나를 번쩍 들고는 스스로의 힘으론 볼 수 없는 세상을 보여주던 한 시절의 다정한 모습, 서로가 서로를 찍어 주었던 이목구비가 없는 사진, 수없이 입을 맞췄던 입술까지. 눈부신 빛은 여전히 눈물이 나게 합니다. 시작부터 끝을 예감했지만 예정된 결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신을 떠난 뒤 보낸 날들은 가혹했습니다.


계절의 속성 중 하나는 순환이라서 끝인 것 같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같은 계절이 돌아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시 봄은 찾아왔지만 이를 어쩌나요, 당신을 만난 봄 이후로 기쁨의 감정은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된 것을. 나는 어떡하면 좋나요.


1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하나 더 쌓인 서로를 우리는 또 다시 만나게 될까요. 아니면 언젠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세월이 겹겹이 쌓인 채로 만나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스칠 수는 있을까요. 어느 생에서 그럴 수 있을까요. 이번 생일지, 다음 생일지 나는 이제 장담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수단이었던 글이 이제는 당신의 흔적들을 다시 되짚으며 굳이 불필요한 앓이를 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배설이 되었습니다. 구토가 되었습니다. 아, 토기(吐氣)를 또 느끼고 맙니다. 뱉어내지 못하면 괴롭기에, 굳이 괴로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면서도 뱉어내며 삽니다. 나의 삶이 이렇습니다.


1년이 흐르고 10년이 흘러도 우리는 이제 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남들의 앞에서는 서로 존칭을 쓰고, 혹시라도 개인적으로 연락이 닿는다면 기껏해야 '나, 너'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겠지요. 더 이상 우리가 '우리'로 불릴 순 없겠지요. 그래요, 1년이 지났고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 하나뿐입니다. 단순한 사실 하나의 변화뿐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 울며 인생을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일까요. 왜 나의 기억은 역행하는 것일까요.


스스로에게 잊음을 강요해도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리는 데에 1년이 걸렸습니다. 차라리 잊을 수 없다면 나는 평생 당신을 안고 살겠습니다.


1년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이 와도 변함이 없는 사실 중 하나를 감히 끝말로 적습니다.


내 생에서 언젠가 당신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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