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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Oct 29. 2020

밤하늘의 별

청명한 하늘에 어둠이 드리우면 반짝이는 별들이 꽤나 보인다. 어느덧 별이 수놓은 하늘에 익숙해졌는지 내가 사는 곳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 덕분에 소소한 행복을 보는 법을 알게 됐다. 


스물여섯을 시작하는 겨울, 스물다섯을 가장 가깝게 보낸 친구와 모로코 여행을 떠났다. 나는 여행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는 하나. 함께하는 이들과 멋진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며칠을 있든지 중요하지 않아 추억을 공유하고 싶은 이의 제안을 따라가는 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한 친구가 오스트리아 교환학생을 왔다. 같은 유럽 대륙에 있는 것만으로 안심이 됐는데, 고맙게도 친구가 스페인에 자주 와 나는 심심할 틈 없는 가을을 보냈다. 우리는 2019년을 보내는 연말과 2020년을 맞이하는 새해를 특별한 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가 고른 여행지는 모로코의 사막투어였다. 사막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사막에서 바라보는 별을 꿈꿨다. 


스물다섯의 마지막 날, 우리는 사막으로 들어가기 전 마라케시에서 하루를 보냈다. 갑자기 변경된 계획에 급히 알아본 것임에도 꽤 좋은 숙소를 구했다. 둘이서 지내기 딱 맞는 크기에 다홍빛 벽지로 모로코만의 특별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옥상 층의 방문을 열고 나가면 누워서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선배드가 있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까만 하늘에 콕콕 박힌 별에 시선을 뺏겼다. 스물여섯까지 두 시간 남겨두고 나는 혼자 선배드에 누워 밤하늘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콧노래를 부르며 작은 별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럼에도 그때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스쳤기 때문일까, 다가올 새해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찼기 때문일까.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이 즈음이면 섞이는 그 감정들을 간직한 채 방으로 내려왔다. 


다음날 열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우리는 드디어 사하라 사막으로 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을 먹은 후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마라케시보다 더 크고 반짝이는 별이 쏟아져 내렸다. 이후 사막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밤하늘에선 별자리를 다섯 개는 넘게 찾아냈다. 높은 빌딩 같은 그 어떤 방해물 없이 온전히 빛나는 별.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과 두런두런 들리는 소리 속에서 별을 바라봤다. 그저 하늘을 쳐다보기만 하는 것이 이렇게 큰 행복임을 처음 알았다. 카메라엔 담기지 않는 수많은 별들을 오직 이 순간, 눈으로만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또 다른 친구들이 유럽 여행을 왔다.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쿠엥카에 도착한 그들을 기차역까지 마중 나갔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이곳의 기차역은 다른 도시보다 유난히 어둡다. 그래서 더 잘 보였던 것일까.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표현하는 것도 잠시, 그들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 별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이들이 이곳의 하늘을 보고 그렇게 좋아할 줄도 몰랐다. 한 친구는 도시를 떠나는 날, 무엇보다 밤하늘의 별을 잊을 수가 없다 말했다. 나는 모르는 채 넘어가는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친구에게 놀랐다.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나 넓고 높은 하늘인지, 어떤 색을 띠는지 가만히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어제의 하늘과 다른 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같은 하늘이지만 매일 달라지는 모습을 간직하려 하자, 내 핸드폰은 어느덧 하늘 사진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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