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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Oct 29. 2020

AS

언론과의 2학년에선 본격적인 기사 쓰기 과제가 주를 이뤘다. ‘글로벌 미디어 구조’ 과목의 과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현직 기자 인터뷰 하기’였다. 자유 인터뷰가 아닌 공통된 필수 질문이 있었다. 2008년 경제 위기 때 미디어에 미친 영향, 그에 따른 공신력 문제, 미디어의 수익 구조와 앞으로의 방향성 등의 기본 질문과 개인이 하고 싶은 추가 질문을 포함해야 했다.


일과 공부, 과제를 동시에 하며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나는 그 과제를 조금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현직 기자와 인터뷰하는 것은 나에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좀처럼 손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돼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나름 전략을 세웠다. 축구 기자라는 공통점을 언급할 수 있는 스포츠 기자를 찾을 것. 한국에 관련된 기사를 쓴 적 있는 기자를 찾을 것. 한참 후 나는 스페인에서 꿈을 꾸는 한국 축구 선수들을 다룬 기획 기사를 발견했다. 이 기자의 소속은 2018년 기준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스포츠 언론사 '아스(AS)'였다. 이곳은 스페인 내 1위 일간지 '엘 파이스(El pais)'와 같은 계열사로, 기본 질문에 대한 답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메일을 보냈다.


내 상황을 설명하고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기자임을 언급했지만 사실은 학생의 과제로 쓰일 인터뷰 요청을 단번에 받아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메일 주소와 함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놓겠다는 데스크의 답변을 받았다. 호세 루이스 게레로 기자 역시 기꺼이 내 요청을 받아들여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사무실에서 보자는 약속을 잡았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마드리드행 기차 안에서, ‘아스’ 사무실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들뜨는 마음을 다잡기 바빴다. 화려한 건물에 들어서 ‘내가 여기도 와보는구나’라 생각하던 중 나를 발견한 게레로는 회사 내 카페로 안내했다.


게레로는 약 15년간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전담했다. 현장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던 게레로는 올해부터 온라인 뉴스 담당으로 팀을 옮겼다. 원래 월요일은 그가 쉬는 날이지만 마침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어 오후 출근을 해야 했다. 그는 나에게 운이 좋다며 웃었다.


커피 한잔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하며 나는 완벽하지 않은 내 스페인어 실력에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는 평소보다 천천히 말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우리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종이 신문에서 인터넷 신문으로 변하며 생긴 수익 문제, 그로 인해 생산하는 자극적인 기사들, 떨어지는 기자의 공신력과 이를 회복하기 위한 기자 개인의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변하는 시대에 맞춰가야 하지만 그 속에서 진실과 신뢰를 잃은 글은 힘도 잃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혹은 스페인 어느 한 곳이 아닌 언론계에서 공통으로 갖는 고민거리를 약 40분간 나눴다. 


그는 내가 스페인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면서 한국의 축구 기자이기도 한 것에 무척 재밌어했다. 내가 대뜸 찾아온 것을 신기해하면서도 새로운 인연이 된 것에 반가워했다. 사무실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그를 따라 나는 내가 매일 보던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터로 발을 들였다.


사무실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스페인에만 50여 명의 기자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 명 한 명에게 나를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언젠가 경기장에서 마주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담당 팀부터 SNS, 번역, 디자인 담당 팀까지 차례대로 인사를 나눴다. 너무 많은 이들과 인사해 단 한 명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후 게레로는 나를 자료 보관함에 데려갔다. 창단 기사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신문을 보관한 곳이었다. 1967년 12월 6일, 세상에 처음 나온 이곳의 창단 기사는 흑백 프린트부터 사진의 배치 방식, 글씨체까지 지금과 달랐다.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모든 내용을 볼 수 있는 세상에서 50년 넘은 신문을 촉감으로 마주할 수 있다니. 이 신문을 만든 이들은 어떤 고민과 생각으로 글자를 써 내려갔을지 궁금해졌다.


게레로는 높은 점수를 받길 원한다며, 나중에 기자로서 다시 만나자고 덧붙였다.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쿠엥카행 기차에 올라타며 오늘의 경험을 되새겼다.


이전에 한 교수는 내게 왜 스페인에 왔는지 물었다. 이곳 언론의 공신력은 잃은 지 오래라고, 이곳에서 네가 무언가 이루고 싶다면 끊임없이 고민하고 너만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적 있었다. 내 글이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갖춰야 할까. 나는 이곳에서 내 역량을 키우고 영역을 구축하면 되는 것이라 간단히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글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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